◎뮌헨시 「옥토버 페스트」를 가다/관광객 6백만… 2주새 수입 5천억원/불경기로 공장 절반 폐업… 신제품 경쟁
맥주의 본 고장인 독일인들의 음주취향이 바뀌는 것인가.
통일이후 서독의 맥주회사들은 동독의 맥주회사와 합작,인수를 통해 일시적으로 고성장을 기록했으나 경제침체로 2년전 2천여개나 됐던 맥주공장이 지금은 1천1백개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1인 내지 5인이하의 소규모 지방 맥주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경기침체에다 젊은층의 맥주 소비가 급격히 줄고 포도주로 입맛이 바뀌고 있다.그래서 작년보다 맥주소비량이 1.5%나 줄었다.
지난 1일까지 2주일 간 열린 세계최대의 맥주축제인 뮌헨의 「옥토버페스트(10월 축제)」는 이제 단순한 축제 차원을 넘어 독일의 맥주산업 진흥과 관광특수를 노리는 한마당으로 활용되고 있다.올해로 1백62회를 맞은 「옥토버페스트」가 시작된 지난 달 16일부터 전 세계에서 몰려든 맥주 애호가들과 관광객들은 6백여만명.10개의 대형 맥주텐트들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번 축제에는 뢰벤브로이와 호프브로이,하커브로이,아우구스티너브로이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6개 맥주회사를 비롯,뮌헨 소재 10개 맥주회사들이 참여했다.맥주회사들은 옥토버페스트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큰 명예로 여긴다.
1810년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 황태자와 작센의 테레사 공주의 결혼을 축하하는 경마경기에서 유래된 옥토버페스트는 이제 단 2주일동안 약10억 마르크(한화 5천50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뮌헨시 최고의 수입원이 됐다.
독일에는 맥주의 본고장답게 2천2백개의 브랜드와 6천여 종류의 맥주가 있다.독일은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맥주소비국이며 1인당 연간 맥주소비량은 1백38ℓ로 체코에 이어 세계 2위이다.독일맥주산업은 거대한 규모에 비해 전체생산량의 80%가 제조공장의 50㎞이내에서 소비될 정도로 내수지향적이다.따라서 대부분 생맥주와 저온처리 방법으로 생산된다.
독일은 맥주 종주국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1516년 맥주원료 순수령이 선포된 이후 5백년 가까이 고집스럽게 유지해온 「쌉쌀하고 쓴」 순수한 맥주맛을 젊은층의 바뀐 입맛에 양보하고 있었다.<뮌헨=김균미 기자>
맥주의 본 고장인 독일인들의 음주취향이 바뀌는 것인가.
통일이후 서독의 맥주회사들은 동독의 맥주회사와 합작,인수를 통해 일시적으로 고성장을 기록했으나 경제침체로 2년전 2천여개나 됐던 맥주공장이 지금은 1천1백개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1인 내지 5인이하의 소규모 지방 맥주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경기침체에다 젊은층의 맥주 소비가 급격히 줄고 포도주로 입맛이 바뀌고 있다.그래서 작년보다 맥주소비량이 1.5%나 줄었다.
지난 1일까지 2주일 간 열린 세계최대의 맥주축제인 뮌헨의 「옥토버페스트(10월 축제)」는 이제 단순한 축제 차원을 넘어 독일의 맥주산업 진흥과 관광특수를 노리는 한마당으로 활용되고 있다.올해로 1백62회를 맞은 「옥토버페스트」가 시작된 지난 달 16일부터 전 세계에서 몰려든 맥주 애호가들과 관광객들은 6백여만명.10개의 대형 맥주텐트들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번 축제에는 뢰벤브로이와 호프브로이,하커브로이,아우구스티너브로이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6개 맥주회사를 비롯,뮌헨 소재 10개 맥주회사들이 참여했다.맥주회사들은 옥토버페스트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큰 명예로 여긴다.
1810년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 황태자와 작센의 테레사 공주의 결혼을 축하하는 경마경기에서 유래된 옥토버페스트는 이제 단 2주일동안 약10억 마르크(한화 5천50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뮌헨시 최고의 수입원이 됐다.
독일에는 맥주의 본고장답게 2천2백개의 브랜드와 6천여 종류의 맥주가 있다.독일은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맥주소비국이며 1인당 연간 맥주소비량은 1백38ℓ로 체코에 이어 세계 2위이다.독일맥주산업은 거대한 규모에 비해 전체생산량의 80%가 제조공장의 50㎞이내에서 소비될 정도로 내수지향적이다.따라서 대부분 생맥주와 저온처리 방법으로 생산된다.
독일은 맥주 종주국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1516년 맥주원료 순수령이 선포된 이후 5백년 가까이 고집스럽게 유지해온 「쌉쌀하고 쓴」 순수한 맥주맛을 젊은층의 바뀐 입맛에 양보하고 있었다.<뮌헨=김균미 기자>
1995-10-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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