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서 신음 멈추자 죽음의 공포 엄습/“살아야겠다” 강한 의지… “엄마 난 괜찮아”
「기적은 또 있었다」
「세번째 기적」의 주인공은 열아홉살의 가녀린 백화점 여직원 박승현(강동구 명일동 삼익그린 아파트 506동 1006호)양.
승현양은 지난 67년 구봉광산에 매립됐다 16일만에 구조됐던 양창선(당시 36세)씨의 기록을 깨고 17일만에 「지옥」에서 살아왔다.
초인적인 의지로 살아난 승현양은 구조될 때까지 한방울의 물도 마시지 않았다고 밝혀 의료진들을 놀라게 했다.
29일 하오 5시50분.승현양은 평소처럼 A동 지하1층 아동복매장에서 주부 손님들을 맞느라 분주했다.
하루종일 서 있느라 다리가 아프고 피곤이 몰려왔지만 조금만 있으면 퇴근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가벼웠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쾅』하는 굉음과 함께 천장과 벽이 갈라지며 콘크리트더미가 머리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승현아 뛰어』
옆 매장에서 일하는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중앙홀 쪽 출입구를 향해 무조건 뛰었다.그러나 불과 몇ⓜ도 못가서 무언가 둔탁한 물건에 머리를 맞고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깨어보니 주변은 칠흑같은 어둠이었다.간간히 부상을 입은 사람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렸다.그러나 그것도 잠시,사방은 완전한 침묵에 휩싸였다.죽음의 공포가 찾아왔다.
『여기서 이대로 죽을수는 없어』
장사가 안돼 몇달전에 식당을 그만두고 고민하고 계신 엄마와 아빠,어려서부터 키워주신 고마운 할머니,자주 다투기는 했지만 항상 믿음직했던 승민오빠,중학교 1학년인 귀염둥이 막내 승호….
사랑스런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갔다.영파여중 때부터 단짝인 혜진이의 얼굴도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였다.
오른쪽 무릎이 욱신거렸고 공간은 팔과 다리를 펴지 못할만큼 비좁았다.
바닥을 만져봤다.물이 고여있었지만 녹 냄새가 너무 심해 마실수 없었다.
『살려주세요』
젖먹던 힘까지 다내 소리를 지르고 콘크리트 벽을 두드렸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비몽사몽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깨기를 수십차례.물한모금 마시지 못한채 죽음의공포가 시시각각으로 엄습했다.
그러다가 구조되기 하루나 이틀전.『승현아 이 사과를 받아라』
엄마와 함께 갔던 미아리 금룡사에서 뵌 낯익은 스님이었다.
손을 내밀었다.사과를 받으려는 순간 화락 잠이 깼다.한 닷새쯤 지난 것같았다.
이때 『쿵 쿵』하는 소리가 머리위 가까이에서 들렸다.포클레인이 두드리는 소리같았다.
아 구조대가 왔구나.
『여기 사람있어요』
갑자기 한줄기 빛이 구멍 틈으로 비쳤다.눈이 부셨다.
손전등 빛이었다.
『이제는 살았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 부끄러운 생각이 와락 들었다.사고당시 찢어지고 물에 젖어 옷을 모두 벗고 있었기 때문이다.
『옷을 갖다주세요』
파란색 담요와 수건이 들어왔다.
『이름이 뭡니까』
소방사아저씨가 물었다.
『19살 박승현이에요.삼풍직원이에요.물좀 갖다 주세요』
흰가운을 입은 의사가 수건에 물을 적셔 입에 대주었다.
구급차에 실렸다.
아직 꿈인듯 엄마 얼굴도 희미하게 보였다.
『승현아…』
『엄마 나는 괜찮아 그런데 오늘이 며칠이야』
2백77시간의 기나긴 사투가끝나는 순간이었다.<김성수 기자>
◎“다른 가족도 기쁨 누렸으면…”/박양 부모 일문일답/사고당일 사찰 찾아가 “살려달라” 불공/최군·유양과는 친남매처럼 지냈으면
박승현양의 아버지 박제원(52)씨와 어머니 고순영(46)씨는 『나머지 실종자 가족들도 우리 가족과 같은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고 「제4의 기적」을 간절히 소망했다.
16일 박씨부부와 가진 일문일답.
지금 딸의 상태는 어떤가.
▲(아버지)아침에는 물만 먹었으나 점심 때는 미음을 먹는 등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어머니)맨날 울었다.시어머니 앞에서 마음놓고 울 수도 없고 승현이 방으로 가 사진을 어루만지며 매일 울었다.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미아리 사찰에서 승현이를 살려달라고 불공을 드렸다.
딸이 살아있으리라는 꿈같은 것은 꾸지 않았나.
▲(어머니)내가 꾼 것은 없으나 스님으로부터 승현이는 꼭 구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승현이도 매몰됐을 때 꾼 꿈에서 어느 스님으로부터 사과 1개를 건네받았다고 했다.우리 승현이가 꼭살아돌아올 것이라는 암시였던 것같다.(아버지)상황이 어렵다고 생각했다.승현이가 구조됐던 지점에서 신원미상의 사체도 몇 구 나왔었다.이 사체 가운데 승현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매우 불안했었다.도와주신 구조대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먼저 구조된 최명석군과 유지환양을 승현이가 알고 있다던데.
▲맞다.나이도 서로 비슷하고 다 어렵게 살아난 만큼 친남매처럼 지냈으면 좋겠다.
승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어머니)뭐든 잘먹는다.특히 돼지고기 등 육류를 좋아했다.퇴원하면 승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해 큰 잔치를 벌일 생각이다.
아버지가 최근 사업을 그만 두었다고 하던데.
▲서초동에서 조그만 분식점을 운영했으나 제대로 되지않아 3개월 전에 처분했다.승현이가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니 이젠 사업도 잘될 것같은 느낌이다.<박현갑 기자>
「기적은 또 있었다」
「세번째 기적」의 주인공은 열아홉살의 가녀린 백화점 여직원 박승현(강동구 명일동 삼익그린 아파트 506동 1006호)양.
승현양은 지난 67년 구봉광산에 매립됐다 16일만에 구조됐던 양창선(당시 36세)씨의 기록을 깨고 17일만에 「지옥」에서 살아왔다.
초인적인 의지로 살아난 승현양은 구조될 때까지 한방울의 물도 마시지 않았다고 밝혀 의료진들을 놀라게 했다.
29일 하오 5시50분.승현양은 평소처럼 A동 지하1층 아동복매장에서 주부 손님들을 맞느라 분주했다.
하루종일 서 있느라 다리가 아프고 피곤이 몰려왔지만 조금만 있으면 퇴근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가벼웠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쾅』하는 굉음과 함께 천장과 벽이 갈라지며 콘크리트더미가 머리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승현아 뛰어』
옆 매장에서 일하는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중앙홀 쪽 출입구를 향해 무조건 뛰었다.그러나 불과 몇ⓜ도 못가서 무언가 둔탁한 물건에 머리를 맞고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깨어보니 주변은 칠흑같은 어둠이었다.간간히 부상을 입은 사람들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렸다.그러나 그것도 잠시,사방은 완전한 침묵에 휩싸였다.죽음의 공포가 찾아왔다.
『여기서 이대로 죽을수는 없어』
장사가 안돼 몇달전에 식당을 그만두고 고민하고 계신 엄마와 아빠,어려서부터 키워주신 고마운 할머니,자주 다투기는 했지만 항상 믿음직했던 승민오빠,중학교 1학년인 귀염둥이 막내 승호….
사랑스런 가족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갔다.영파여중 때부터 단짝인 혜진이의 얼굴도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움직였다.
오른쪽 무릎이 욱신거렸고 공간은 팔과 다리를 펴지 못할만큼 비좁았다.
바닥을 만져봤다.물이 고여있었지만 녹 냄새가 너무 심해 마실수 없었다.
『살려주세요』
젖먹던 힘까지 다내 소리를 지르고 콘크리트 벽을 두드렸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비몽사몽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깨기를 수십차례.물한모금 마시지 못한채 죽음의공포가 시시각각으로 엄습했다.
그러다가 구조되기 하루나 이틀전.『승현아 이 사과를 받아라』
엄마와 함께 갔던 미아리 금룡사에서 뵌 낯익은 스님이었다.
손을 내밀었다.사과를 받으려는 순간 화락 잠이 깼다.한 닷새쯤 지난 것같았다.
이때 『쿵 쿵』하는 소리가 머리위 가까이에서 들렸다.포클레인이 두드리는 소리같았다.
아 구조대가 왔구나.
『여기 사람있어요』
갑자기 한줄기 빛이 구멍 틈으로 비쳤다.눈이 부셨다.
손전등 빛이었다.
『이제는 살았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 부끄러운 생각이 와락 들었다.사고당시 찢어지고 물에 젖어 옷을 모두 벗고 있었기 때문이다.
『옷을 갖다주세요』
파란색 담요와 수건이 들어왔다.
『이름이 뭡니까』
소방사아저씨가 물었다.
『19살 박승현이에요.삼풍직원이에요.물좀 갖다 주세요』
흰가운을 입은 의사가 수건에 물을 적셔 입에 대주었다.
구급차에 실렸다.
아직 꿈인듯 엄마 얼굴도 희미하게 보였다.
『승현아…』
『엄마 나는 괜찮아 그런데 오늘이 며칠이야』
2백77시간의 기나긴 사투가끝나는 순간이었다.<김성수 기자>
◎“다른 가족도 기쁨 누렸으면…”/박양 부모 일문일답/사고당일 사찰 찾아가 “살려달라” 불공/최군·유양과는 친남매처럼 지냈으면
박승현양의 아버지 박제원(52)씨와 어머니 고순영(46)씨는 『나머지 실종자 가족들도 우리 가족과 같은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고 「제4의 기적」을 간절히 소망했다.
16일 박씨부부와 가진 일문일답.
지금 딸의 상태는 어떤가.
▲(아버지)아침에는 물만 먹었으나 점심 때는 미음을 먹는 등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어머니)맨날 울었다.시어머니 앞에서 마음놓고 울 수도 없고 승현이 방으로 가 사진을 어루만지며 매일 울었다.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미아리 사찰에서 승현이를 살려달라고 불공을 드렸다.
딸이 살아있으리라는 꿈같은 것은 꾸지 않았나.
▲(어머니)내가 꾼 것은 없으나 스님으로부터 승현이는 꼭 구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승현이도 매몰됐을 때 꾼 꿈에서 어느 스님으로부터 사과 1개를 건네받았다고 했다.우리 승현이가 꼭살아돌아올 것이라는 암시였던 것같다.(아버지)상황이 어렵다고 생각했다.승현이가 구조됐던 지점에서 신원미상의 사체도 몇 구 나왔었다.이 사체 가운데 승현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매우 불안했었다.도와주신 구조대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먼저 구조된 최명석군과 유지환양을 승현이가 알고 있다던데.
▲맞다.나이도 서로 비슷하고 다 어렵게 살아난 만큼 친남매처럼 지냈으면 좋겠다.
승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어머니)뭐든 잘먹는다.특히 돼지고기 등 육류를 좋아했다.퇴원하면 승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마련해 큰 잔치를 벌일 생각이다.
아버지가 최근 사업을 그만 두었다고 하던데.
▲서초동에서 조그만 분식점을 운영했으나 제대로 되지않아 3개월 전에 처분했다.승현이가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니 이젠 사업도 잘될 것같은 느낌이다.<박현갑 기자>
1995-07-1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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