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석가탄신일이다.남방불교에서는 석가가 태어나자마자 『이번의 태어남이 윤회의 마지막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해탈을 해서 다시는 나고 죽는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한문권의 불교에서는 이 말을 「천상천하유아독존」 즉 「천상이나 지상을 가릴 것이 없이 내가 가장 높다」는 말로 번역했다.어떤 이는 이 말을 부처로서의 석가가 높다는 뜻으로 풀이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여기서 「나」라고 하는 것을 「모든 사람」으로 해석하기도 한다.그런데 남방불교에서 전하는 「다시는 반복적인 삶을 살지 않겠다」는 말과 맥이 통하도록 해석한다면 「어느 곳에서나 나는 남과 비교되지 않고 나 스스로 독특하게 존귀하다」는 의미가 된다.사람으로 태어나서 무의미하게 기계적인 반복동작을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고,남의 삶을 모방하는 복사인생이 되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인의 경지에 들지 못한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추구하는 것이 아무리 고상하다고 하더라도 오욕락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돈·사랑·음식·명예·안락가운데서 전부나 일부를 얻고자 한다.설사 재물욕이나 애욕으로부터 초탈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명예욕을 벗어나기는 어렵다.그래서 선사들은 사람의 수준을 세가지로 분류한다.가장 낮은 수준의 사람은 돈이나 음식에 떨어지고,중간 수준의 사람은 사랑에 떨어지며,가장 높은 수준의 사람은 명예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같은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선사들의 분류도 맞지 않게 되었다.물질을 많이 가지면 자연히 사랑과 명예가 뒤따르거나 명예마저도 물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대학졸업을 명예라고 부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기를 쓰고 대학에 입학하려고 하는 이유는 꼭 학문을 닦는 데만 있지 않다.많은 사람들은 대학에 들어가야만 좋은 직장을 얻어 돈을 벌 수 있고 원하는 상대와 결혼할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생각한다.어떤 예술가가 얼마나 훌륭하느냐는 그의 작품이 얼마나 비싼 값에 팔리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너도 나도 돈을 벌고 돈을 쓰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사람에게오욕락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돈과 사랑과 명예를 떠나서 별도로 살만한 재미가 있다는 것도 아니다.문제는 자기에게 꼭 필요하고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양을 가지는 데 만족하지 않고 「남보다 더 많이」또는 「남은 저만큼 이루었는데 내가 이래서 되나」하는 데 있다.오늘의 우리에게 「가난」이란 먹고 입을 것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남보다 가난하다」는 뜻이다.「출세」란 스스로 독특하게 뛰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다.「남보다 앞서서 성공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남을 의식해서 살다 보니 남이 장에 가면 나도 장에 가야하고,남이 차를 사면 나도 차를 사야한다.남이 하는 것을 내가 못하면 그것은 아주 억울한 일이다.내 삶의 기준은 모두 「남」에게 있다.나를 남과 비교하고 남이 이룬 것을 이루려고 하거나 남보다 앞서려고 하는 것은 자기를 살지 않고 남을 살려고 하는 것과 같다.남을 복사한 제품이 되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간단하게 말한다면 행복이다.그런데 사람이 남에게 의지하거나 남과 견주어서 행복해지려고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뒤떨어졌으면 따라잡아야 하고 따라잡았으면 앞서야 하고 앞섰으면 그것을 유지하려고 무진 애를 써야 한다.피로하기만 할 뿐이다.또 남의 복사품으로서의 나는 나로서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내가 그렇게 살지 않더라도 나의 원본인 남이 나를 잘 살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다.오늘 불탄일에 돈이나 명예와 같은 오욕락으로 남의 복사품이 되지 않고 스스로 독특하게 높고,스스로 독특하게 행복해지는 길을 곰곰이 되새겨 봄직하다.
성인의 경지에 들지 못한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추구하는 것이 아무리 고상하다고 하더라도 오욕락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돈·사랑·음식·명예·안락가운데서 전부나 일부를 얻고자 한다.설사 재물욕이나 애욕으로부터 초탈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명예욕을 벗어나기는 어렵다.그래서 선사들은 사람의 수준을 세가지로 분류한다.가장 낮은 수준의 사람은 돈이나 음식에 떨어지고,중간 수준의 사람은 사랑에 떨어지며,가장 높은 수준의 사람은 명예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같은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선사들의 분류도 맞지 않게 되었다.물질을 많이 가지면 자연히 사랑과 명예가 뒤따르거나 명예마저도 물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대학졸업을 명예라고 부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기를 쓰고 대학에 입학하려고 하는 이유는 꼭 학문을 닦는 데만 있지 않다.많은 사람들은 대학에 들어가야만 좋은 직장을 얻어 돈을 벌 수 있고 원하는 상대와 결혼할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생각한다.어떤 예술가가 얼마나 훌륭하느냐는 그의 작품이 얼마나 비싼 값에 팔리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너도 나도 돈을 벌고 돈을 쓰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사람에게오욕락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돈과 사랑과 명예를 떠나서 별도로 살만한 재미가 있다는 것도 아니다.문제는 자기에게 꼭 필요하고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양을 가지는 데 만족하지 않고 「남보다 더 많이」또는 「남은 저만큼 이루었는데 내가 이래서 되나」하는 데 있다.오늘의 우리에게 「가난」이란 먹고 입을 것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남보다 가난하다」는 뜻이다.「출세」란 스스로 독특하게 뛰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다.「남보다 앞서서 성공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남을 의식해서 살다 보니 남이 장에 가면 나도 장에 가야하고,남이 차를 사면 나도 차를 사야한다.남이 하는 것을 내가 못하면 그것은 아주 억울한 일이다.내 삶의 기준은 모두 「남」에게 있다.나를 남과 비교하고 남이 이룬 것을 이루려고 하거나 남보다 앞서려고 하는 것은 자기를 살지 않고 남을 살려고 하는 것과 같다.남을 복사한 제품이 되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간단하게 말한다면 행복이다.그런데 사람이 남에게 의지하거나 남과 견주어서 행복해지려고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뒤떨어졌으면 따라잡아야 하고 따라잡았으면 앞서야 하고 앞섰으면 그것을 유지하려고 무진 애를 써야 한다.피로하기만 할 뿐이다.또 남의 복사품으로서의 나는 나로서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내가 그렇게 살지 않더라도 나의 원본인 남이 나를 잘 살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다.오늘 불탄일에 돈이나 명예와 같은 오욕락으로 남의 복사품이 되지 않고 스스로 독특하게 높고,스스로 독특하게 행복해지는 길을 곰곰이 되새겨 봄직하다.
1995-05-0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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