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아닌 “원폭 피해자”부각/우익세력 「부전·사죄결의」극력 저지/과거 되레 찬미… 정치·군사대국 “집념”/진솔히 과거청산한 독과 대조… “위험한 역사의 시작”우려
일본 히로시마(광도)에 있는 평화공원.원폭의 비극을 통해 역설적으로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공원.그 자료관에는 8시15분에 멈춰 있는 부서진 시계가 전시돼 있다.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시각을 마지막으로 알리고 더 이상 가지못하고 있는 시계.일본은 그 정지한 시계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돔건물등을 원폭피해의 상징물로 보존하고 있다.
평화공원은 인류역사상 처음인 원폭피해의 처참함을 증언하고 있다.그러한 원폭피해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온 인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히로시마에 평화공원을 만든 것은 원폭피해의 참담함을 보여줌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없기를 기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본은 말한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또다른 뜻이 있다.원폭피해의 비극을 강조하며 아시아에서의 가해자 일본을 세계의 피해자 일본으로 바꾸려는 저의가 있는것이다.
평화공원에서의 일본은 피해자라 할 수 있다.그러나 일본은 아시아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른 광기의 가해자였다.일본 아사히신문의 와다 다카시씨는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는 20세기 비극의 기념비이다.그러나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의 커다란 차이점은 히로시마가 피해자 중심의 기념관을 만든 데 비해 아우슈비츠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전체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피해자 중심의 평화공원을 비판했다.그는 『일본이 가해자 의식을 갖지 않으면 역사인식의 전체성을 상실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에도 이같이 일본의 가해자 인식을 말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적지않다.그러나 연세대의 최정호 교수는 『가해자 일본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일본의 집요한 「히로시마 캠페인」은 어느덧 양식있는 지식인의 사고조차 현혹시켜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를 동격의 사건으로 대칭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최 교수는 『연합국이 가해자가 되고 추축국이 희생자가 된 히로시마의 비극에 대비되는 유럽의 비극은 아우슈비츠가 아니라 독일의 드레스덴이며 아우슈비츠의 대학살과 비교되는 범죄는 군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남경대학살』이라고 말했다.
드레스덴의 비극은 연합국 폭격기 편대가 1945년 2월 피란민들이 집결한 평화의 도시 드레스덴을 저공비행하며 융단폭격,30여만명이 희생된 대참사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드레스덴의 비극으로 아우슈비츠의 범죄를 중화시키려 한다든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바꾸려하지 않았다고 최 교수는 강조했다.독일은 나치가 저지른 범죄를 마음으로부터 사과·반성하고 성실히 손해배상을 해왔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배상에 매우 인색했다.그들은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해 왔다.일부 세력은 아시아 침략의 「정당성」까지 주장,태평양전쟁은 「아시아 해방전쟁」이었다고 미화하고 있다.그러나 역사를 지우고 고쳐 쓴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슈미트 전서독총리는 지난 1월7일 아사히신문의 전후 50주년 기념 특집 인터뷰에서 『일본은 독일과 같이 침략과 범죄에 대한 반성과 보상을 하지않았다.한국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오히려 점령시대의 범죄를 부정하고 종군위안부에 대한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전후 50주년이 되는 올해 과거청산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하고 있다.일본여당은 「전후50년문제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정부와 함께 종군위안부문제 등의 해결방안으로 「평화교류기금」의 창설을 검토하는 등 과거청산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는 국회의 부전·사죄 결의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무라야마 총리의 국회결의 움직임은 보수·우익 세력의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다.자민당의 「전후50주년 국회의원연맹」과 야당인 신진당의 많은 의원들이 국회결의 반대운동을 적극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익세력들은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었음을 강변하고,국회의 부전결의를 저지하며 전몰자를 추모하는 범국민운동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범국민운동에는 「일본유족회」,「전후50주년 국회의원연맹」,「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 등 30개 이상의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5백만명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지난 22일에는 도쿄에서 대규모 부전결의 반대집회가 열렸다.집권 자민당은 선거공약서에서 과거반성부분을 삭제해 버렸다.
일본의 보수·우익세력은 이같이 과거반성을 통한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를 「찬미」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은 히로시마의 원폭이 일본의 양심까지도 마비시켰고 과거 침략에 대한 반성·사죄 의식은 평화공원의 정지된 시계처럼 정지하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사회의 이러한 현상은 전후 50주년을 맞아 과거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며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과거청산」 전략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다.그러한 위험성은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는 정치·군사대국화의 야망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일본은 지금 전후 축적한 경제력을 정치·군사력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경제력을 배경으로한 정치·군사강국은 일본의 21세기 국가전략이다.그러나 진정한 과거청산없는 대국주의 지향은 또다시 가해자가 되는 「위험한 역사」의 시작일지 모른다.일본의 21세기 국가전략을 냉정한 이성적 판단으로 인식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창순 기자>
일본 히로시마(광도)에 있는 평화공원.원폭의 비극을 통해 역설적으로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공원.그 자료관에는 8시15분에 멈춰 있는 부서진 시계가 전시돼 있다.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진 시각을 마지막으로 알리고 더 이상 가지못하고 있는 시계.일본은 그 정지한 시계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돔건물등을 원폭피해의 상징물로 보존하고 있다.
평화공원은 인류역사상 처음인 원폭피해의 처참함을 증언하고 있다.그러한 원폭피해는 일본뿐만이 아니라 온 인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히로시마에 평화공원을 만든 것은 원폭피해의 참담함을 보여줌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없기를 기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본은 말한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또다른 뜻이 있다.원폭피해의 비극을 강조하며 아시아에서의 가해자 일본을 세계의 피해자 일본으로 바꾸려는 저의가 있는것이다.
평화공원에서의 일본은 피해자라 할 수 있다.그러나 일본은 아시아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른 광기의 가해자였다.일본 아사히신문의 와다 다카시씨는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는 20세기 비극의 기념비이다.그러나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의 커다란 차이점은 히로시마가 피해자 중심의 기념관을 만든 데 비해 아우슈비츠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전체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피해자 중심의 평화공원을 비판했다.그는 『일본이 가해자 의식을 갖지 않으면 역사인식의 전체성을 상실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에도 이같이 일본의 가해자 인식을 말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적지않다.그러나 연세대의 최정호 교수는 『가해자 일본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일본의 집요한 「히로시마 캠페인」은 어느덧 양식있는 지식인의 사고조차 현혹시켜 히로시마와 아우슈비츠를 동격의 사건으로 대칭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최 교수는 『연합국이 가해자가 되고 추축국이 희생자가 된 히로시마의 비극에 대비되는 유럽의 비극은 아우슈비츠가 아니라 독일의 드레스덴이며 아우슈비츠의 대학살과 비교되는 범죄는 군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남경대학살』이라고 말했다.
드레스덴의 비극은 연합국 폭격기 편대가 1945년 2월 피란민들이 집결한 평화의 도시 드레스덴을 저공비행하며 융단폭격,30여만명이 희생된 대참사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드레스덴의 비극으로 아우슈비츠의 범죄를 중화시키려 한다든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바꾸려하지 않았다고 최 교수는 강조했다.독일은 나치가 저지른 범죄를 마음으로부터 사과·반성하고 성실히 손해배상을 해왔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배상에 매우 인색했다.그들은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해 왔다.일부 세력은 아시아 침략의 「정당성」까지 주장,태평양전쟁은 「아시아 해방전쟁」이었다고 미화하고 있다.그러나 역사를 지우고 고쳐 쓴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슈미트 전서독총리는 지난 1월7일 아사히신문의 전후 50주년 기념 특집 인터뷰에서 『일본은 독일과 같이 침략과 범죄에 대한 반성과 보상을 하지않았다.한국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오히려 점령시대의 범죄를 부정하고 종군위안부에 대한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전후 50주년이 되는 올해 과거청산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하고 있다.일본여당은 「전후50년문제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정부와 함께 종군위안부문제 등의 해결방안으로 「평화교류기금」의 창설을 검토하는 등 과거청산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는 국회의 부전·사죄 결의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무라야마 총리의 국회결의 움직임은 보수·우익 세력의 강력한 저항을 받고 있다.자민당의 「전후50주년 국회의원연맹」과 야당인 신진당의 많은 의원들이 국회결의 반대운동을 적극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익세력들은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었음을 강변하고,국회의 부전결의를 저지하며 전몰자를 추모하는 범국민운동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범국민운동에는 「일본유족회」,「전후50주년 국회의원연맹」,「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 등 30개 이상의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5백만명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지난 22일에는 도쿄에서 대규모 부전결의 반대집회가 열렸다.집권 자민당은 선거공약서에서 과거반성부분을 삭제해 버렸다.
일본의 보수·우익세력은 이같이 과거반성을 통한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를 「찬미」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은 히로시마의 원폭이 일본의 양심까지도 마비시켰고 과거 침략에 대한 반성·사죄 의식은 평화공원의 정지된 시계처럼 정지하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사회의 이러한 현상은 전후 50주년을 맞아 과거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며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과거청산」 전략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다.그러한 위험성은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는 정치·군사대국화의 야망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일본은 지금 전후 축적한 경제력을 정치·군사력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경제력을 배경으로한 정치·군사강국은 일본의 21세기 국가전략이다.그러나 진정한 과거청산없는 대국주의 지향은 또다시 가해자가 되는 「위험한 역사」의 시작일지 모른다.일본의 21세기 국가전략을 냉정한 이성적 판단으로 인식하고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창순 기자>
1995-03-0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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