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만화 소재 무궁무진합니다”/4컷아닌 80여컷 만화로 정치 상황 꼬집어/6·29이후의 경제·사회적 이슈도 다뤄
시사정치만화가 임재학(45)씨가 그동안 발표한 작품을 모은 「묘한 세상입디다」(전4권·한솔미디어 펴냄)를 최근 냈다.이 작품집에 실린 만화는 모두 1백6편으로 지난 87년 「6·29선언」이후 문제가 됐던 정치·사회·경제적 이슈를 대부분 다루고 있다.
『지난 87년 7월 모 만화잡지에 첫작품을 낼 때만 해도 독자 반응이 두려웠습니다.시사만화라곤 신문의 4컷만화나 만평만 보아왔던 독자들이 80여컷,10쪽 분량에 노골적으로 정치상황을 분석·비판한 만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습니다』
뜻밖에 독자반응은 기대이상이었고 그는 서너달만에 인기 만화가로 떠올랐다.임씨는 『대학교수·변호사·의사같은 지식인층에서 격려전화·편지가 많이 왔다』면서 『우리사회에 정치적 불만을 카타르시스할 방법이 그만큼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그 때를 회상했다.
그의 정치만화가 성공한 이유를 만화계에서는 ▲그 내용에 풍부한 정보와 날카로운 비판,정책적 대안을 갖추었고 ▲걸쭉한 대사에 성적인 비유가 서민정서에 들어맞으며 ▲이런 분위기를 거친듯 하면서도 곡선을 주로 쓴 그림체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민생은 아랑곳없이 싸움질로 지새는 정치인들을 비판한 「이 손 안에 있소이다」에서 국가사회의 위기를 극복한 세력은 늘 백성이었음을 강조한 뒤 「고 집나간 정치를 찾습니다.모든 걸 용서할테니 돌아오너라.국민이 위독하다」고 야유한다.또 빗나간 교육열로 고학력 실업자가 급증한 세태를 빗댄 작품에서는 『대학 졸업장 쥐고 2년이상 노는 사람에게 세금을 물리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의 성공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강도높은 비판을 가하다 보니 관계자들로부터 협박도 자주 받았고 87년에는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기도 했다.또 지난 91년 내놓은 작품집 「이야기 좀 합시다」는 곧바로 판매금지를 당했다.
『판매금지 이유가 「청소년 정서에 해롭다」는 것이었습니다.성인용 만화에 청소년을 걸고 넘어지는게 분해서따져보려고 했더니 누군가가 「5·6공을 하도 비판해서 그랬다」고 귀띔해 주더군요』
그러나 이번 작품집에는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민자당 국회의원),박찬종의원(신민당)등 정치인들과 언론인이 추천사를 써줘 세월이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38살에야 만화가로 데뷔한 늦깎이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하다 중퇴한 뒤 대기업 사원,자영업을 거쳐 뒤늦게 만화계에 뛰어들었다.굳이 정치만화를 시작한 까닭을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기도 하지만 남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스스로의 정치성향을 『보수주의자에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편』이라고 밝히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긴 했지만 아직 우리사회에는 개혁해야 할 부분이 많아 정치만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고 쓰게 웃었다.<이용원기자>
시사정치만화가 임재학(45)씨가 그동안 발표한 작품을 모은 「묘한 세상입디다」(전4권·한솔미디어 펴냄)를 최근 냈다.이 작품집에 실린 만화는 모두 1백6편으로 지난 87년 「6·29선언」이후 문제가 됐던 정치·사회·경제적 이슈를 대부분 다루고 있다.
『지난 87년 7월 모 만화잡지에 첫작품을 낼 때만 해도 독자 반응이 두려웠습니다.시사만화라곤 신문의 4컷만화나 만평만 보아왔던 독자들이 80여컷,10쪽 분량에 노골적으로 정치상황을 분석·비판한 만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습니다』
뜻밖에 독자반응은 기대이상이었고 그는 서너달만에 인기 만화가로 떠올랐다.임씨는 『대학교수·변호사·의사같은 지식인층에서 격려전화·편지가 많이 왔다』면서 『우리사회에 정치적 불만을 카타르시스할 방법이 그만큼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그 때를 회상했다.
그의 정치만화가 성공한 이유를 만화계에서는 ▲그 내용에 풍부한 정보와 날카로운 비판,정책적 대안을 갖추었고 ▲걸쭉한 대사에 성적인 비유가 서민정서에 들어맞으며 ▲이런 분위기를 거친듯 하면서도 곡선을 주로 쓴 그림체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를테면 그는 민생은 아랑곳없이 싸움질로 지새는 정치인들을 비판한 「이 손 안에 있소이다」에서 국가사회의 위기를 극복한 세력은 늘 백성이었음을 강조한 뒤 「고 집나간 정치를 찾습니다.모든 걸 용서할테니 돌아오너라.국민이 위독하다」고 야유한다.또 빗나간 교육열로 고학력 실업자가 급증한 세태를 빗댄 작품에서는 『대학 졸업장 쥐고 2년이상 노는 사람에게 세금을 물리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의 성공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강도높은 비판을 가하다 보니 관계자들로부터 협박도 자주 받았고 87년에는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기도 했다.또 지난 91년 내놓은 작품집 「이야기 좀 합시다」는 곧바로 판매금지를 당했다.
『판매금지 이유가 「청소년 정서에 해롭다」는 것이었습니다.성인용 만화에 청소년을 걸고 넘어지는게 분해서따져보려고 했더니 누군가가 「5·6공을 하도 비판해서 그랬다」고 귀띔해 주더군요』
그러나 이번 작품집에는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민자당 국회의원),박찬종의원(신민당)등 정치인들과 언론인이 추천사를 써줘 세월이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38살에야 만화가로 데뷔한 늦깎이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하다 중퇴한 뒤 대기업 사원,자영업을 거쳐 뒤늦게 만화계에 뛰어들었다.굳이 정치만화를 시작한 까닭을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기도 하지만 남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스스로의 정치성향을 『보수주의자에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편』이라고 밝히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긴 했지만 아직 우리사회에는 개혁해야 할 부분이 많아 정치만화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고 쓰게 웃었다.<이용원기자>
1994-12-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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