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민담 2백가지 지금도 구전/“천지는 하늘이 내린 장사가 팠다” 유래담 이채
중국조선족이 구전하는 백두산 설화만도 2백여편이 넘는다.내용도 다양할 뿐 아니라 분류도 가능한 설화들이 남아 있다.우선 신화적 성격이 강한 설화,자연과 조형물의 유래를 설명하는 기원전설,흥미를 중심으로 하는 민담 등이 고루 분포되었다.예로부터 이 지역에 살던 우리민족에 의해 구전되기 시작한 설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백두산설화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천지」는 하늘의 호수라 일컫는 천지의 유래담으로 신들의 세계와 갈등을 묘사한 일대 서사신화다.내용이 장엄하고 웅장하여 희랍의 인문신화가 손색할 정도다.
「하늘에서 발 붙일 곳을 잃은 흑룡은 지상으로 내려와 백성을 못살게 굴었다.백성들이 죽을 힘을 다해 물을 찾았으나 흑룡의 방해는 더 해 갔다.백장수가 백성들을 위해 사투를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이때 신선의 현몽함을 받은 공주가 백장수를 찾아 왔다.공주는 신선이 말한대로 백장수를 데리고 비밀의 옥장천을 찾는다.이 물을 석달열흘동안 마셔야 흑룡을 대결할 힘이 솟는다.과연 힘이 솟아 백장수는 삽을 들고 백두산 정상에 올라 땅을 파기 시작했다.16삽을 떠서 동서남북으로 버렸더니 16기봉이 생겼다.파인 웅덩이에서는 물이 솟기 시작한다.흑룡이 이것을 방관할 리가 없었다.
이리하여 백장수와 흑룡간에는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다.불칼을 휘두르는 흑룡은 불덩이 같았고,만근도를 휘두르는 백장수는 은덩어리 같았다.둘의 싸움이 승부가 나지 않자 공주는 흑룡을 향해 단검을 퍼부어 백장수에게 가세했다.끝내 당하지 못할 것 같자 흑룡은 동해바다쪽으로 줄행랑을 쳤다.백장수와 공주가 승리의 기쁨을 맛볼 때는 이미 백두산 정상의 웅덩이에는 물이 가득 고였다.둘이는 흑룡이 다시 나타나 방해하지 못하도록 천지 아래에 수정궁을 짓고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것이다」(백두산 전설).
이 천지기원신화는 우리 설화의 괴도퇴치나 고전소설 「김원전」을 방불케 하는 것으로 지하국의 「구두괴도 퇴치설화」와 비교해 볼 때 나라의 위기가 닥칠 때 젊은 영웅이 출현,천우신조로 적진에 투입하여 정체를 밝힌다.그리고 여인의 도움으로 괴수를 당해낼 힘이 생겨 격전이 벌어지는 동안 여인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두는 등의 구성요소가 일치한다.우리는 이미 신화소가 사라져 민담으로 변이구전되고 있는데 비해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신격시하는 이곳 천지유래담은 원형대로 신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식물유래담의 장생초 전설은 효심이 지극한 모자,악질지주의 횡포,기로에 선 가족을 지켜준 백두산신령에 관한 이야기다.
「백두산기슭에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어느해 처음으로 풍성한 수확을 하게 되었다.아직 햇곡식으로 첫밥을 먹어보기도 전에 악질지주가 몽땅 빼앗아 갔다.설상가상 노모는 병으로 눕게 되었다.효자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서 병약한 노모를 봉양했다.그러나 병은 더 깊어만 갔다.아들은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장생초를 손에 넣기 위해 목숨을 걸기로 하고 백두산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깊은 산 속에서 한 노파를 만나게 되고 노파의 도움을 받는다.어렵게 장생초를 손에 넣은 아들은 끝내 뜻을 이루었다.이리하여 백두산에는 훌륭한 약재 장생초가 번식하기 시작했다」(조선족민간고사선).
○삶의 역사가 전설로
백두산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조선족으로 묘사된다.이 「장생초」도 먹고 살기 위해 백두산기슭까지 찾아간 조선족을 대변한다.땅을 개간하여 목숨은 겨우 부지하지만 지주의 횡포는 날로 더해 간다는 내용은 거짓이 아닌 이주민들의 초기 생활상이었다.설화에서는 천우신조,이를 테면 천신만고 끝에 신선같은 노인,산신같은 노파를 만나게 되어 명줄을 잇게 하는 설화의 내용은 전설이 아니라 삶의 역사였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고난을 자포자기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면 하늘도 돕는다는 삶의 철학이 구전설화에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인생관은 비통을 낭만으로 승화할 기질을 타고 났다.낭만적 민족성은 슬픈 이야기도 웃음으로 바꿀 수 있다.백두산설화중에는 신화 전설만이 아니라 오락중심의 민담도 포함되어 있다.신화적 성격이 강한 내용을 민담으로 변이되어 구전하는 것으로 「술이 나오는 그림」이 있다.
○민담엔 교훈성 내포
「옛날 백두산에 한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가난해서 장가도 들지 못했다.추운 겨울 나무하러 숲으로 들어갔다.신음소리를 들었다.그는 움막속에서 곧 목숨이 걷힐 병약한 노인을 찾았다.그는 애써 마련한 자신의 나무로 방을 덥게하고 죽을 끓여 노인을 간병했다.그는 노인에게 바싹 붙어 사흘동안 간병을 했다.덕택으로 노인은 회복이 되었다.노인은 붓으로 송학도를 한폭 그려 주었다.다음날 그 움막을 찾았을 때는 움막도 노인도 흔적이 없었다.나무꾼은 어이없이 앉아 그림을 펴봤다.그림에는 샘물이 있었는데 나무꾼이 『이 샘물이 술이었음 좋겠다』고 말하는 순간 술이 되었다.나무꾼은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신선주를 팔아 부자가 되었다.한 구두쇠 영감이 이 그림을 탐내어 그림을 사려고 했다.강제로 빼앗아 갔다.그리고 많은 군중을 모으고 그림을 펴 기적이 일어날 것을 예고했지만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다.군중은 이 구두쇠 영감을 욕하고 돌아갔다.구두쇠는 관청에 고발했다.막대한 돈을 받고 엉터리 그림을 준 사기꾼을고발한 것이다.나무꾼이 옥에 갇히려는 순간 백발노인이 나타났다.관리와 구두쇠를 나무라고 나서 그림을 들자 그림속의 학이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나무꾼과 신선을 태우고 멀리 날아갔다.이때 청천벽력이 나더니 산이 무너져 사또와 구두쇠를 덮어버리고 말았다」.
교훈성이 내포된 설화지만 기적이 일어나는 그림에 대한 설화는 우리 주변에 많이 구전되고 있다.「그림속의 여인」「술이 나오는 표주박」등이 공통 모티브라고 할 수 있겠다.백두산설화가 백두산을 지키며 사는 우리 중국조선족들에게 항상 생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 수 없다.<최인학 인하대교수·비교민속학>
중국조선족이 구전하는 백두산 설화만도 2백여편이 넘는다.내용도 다양할 뿐 아니라 분류도 가능한 설화들이 남아 있다.우선 신화적 성격이 강한 설화,자연과 조형물의 유래를 설명하는 기원전설,흥미를 중심으로 하는 민담 등이 고루 분포되었다.예로부터 이 지역에 살던 우리민족에 의해 구전되기 시작한 설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백두산설화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천지」는 하늘의 호수라 일컫는 천지의 유래담으로 신들의 세계와 갈등을 묘사한 일대 서사신화다.내용이 장엄하고 웅장하여 희랍의 인문신화가 손색할 정도다.
「하늘에서 발 붙일 곳을 잃은 흑룡은 지상으로 내려와 백성을 못살게 굴었다.백성들이 죽을 힘을 다해 물을 찾았으나 흑룡의 방해는 더 해 갔다.백장수가 백성들을 위해 사투를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이때 신선의 현몽함을 받은 공주가 백장수를 찾아 왔다.공주는 신선이 말한대로 백장수를 데리고 비밀의 옥장천을 찾는다.이 물을 석달열흘동안 마셔야 흑룡을 대결할 힘이 솟는다.과연 힘이 솟아 백장수는 삽을 들고 백두산 정상에 올라 땅을 파기 시작했다.16삽을 떠서 동서남북으로 버렸더니 16기봉이 생겼다.파인 웅덩이에서는 물이 솟기 시작한다.흑룡이 이것을 방관할 리가 없었다.
이리하여 백장수와 흑룡간에는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다.불칼을 휘두르는 흑룡은 불덩이 같았고,만근도를 휘두르는 백장수는 은덩어리 같았다.둘의 싸움이 승부가 나지 않자 공주는 흑룡을 향해 단검을 퍼부어 백장수에게 가세했다.끝내 당하지 못할 것 같자 흑룡은 동해바다쪽으로 줄행랑을 쳤다.백장수와 공주가 승리의 기쁨을 맛볼 때는 이미 백두산 정상의 웅덩이에는 물이 가득 고였다.둘이는 흑룡이 다시 나타나 방해하지 못하도록 천지 아래에 수정궁을 짓고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것이다」(백두산 전설).
이 천지기원신화는 우리 설화의 괴도퇴치나 고전소설 「김원전」을 방불케 하는 것으로 지하국의 「구두괴도 퇴치설화」와 비교해 볼 때 나라의 위기가 닥칠 때 젊은 영웅이 출현,천우신조로 적진에 투입하여 정체를 밝힌다.그리고 여인의 도움으로 괴수를 당해낼 힘이 생겨 격전이 벌어지는 동안 여인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두는 등의 구성요소가 일치한다.우리는 이미 신화소가 사라져 민담으로 변이구전되고 있는데 비해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신격시하는 이곳 천지유래담은 원형대로 신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식물유래담의 장생초 전설은 효심이 지극한 모자,악질지주의 횡포,기로에 선 가족을 지켜준 백두산신령에 관한 이야기다.
「백두산기슭에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어느해 처음으로 풍성한 수확을 하게 되었다.아직 햇곡식으로 첫밥을 먹어보기도 전에 악질지주가 몽땅 빼앗아 갔다.설상가상 노모는 병으로 눕게 되었다.효자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서 병약한 노모를 봉양했다.그러나 병은 더 깊어만 갔다.아들은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장생초를 손에 넣기 위해 목숨을 걸기로 하고 백두산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깊은 산 속에서 한 노파를 만나게 되고 노파의 도움을 받는다.어렵게 장생초를 손에 넣은 아들은 끝내 뜻을 이루었다.이리하여 백두산에는 훌륭한 약재 장생초가 번식하기 시작했다」(조선족민간고사선).
○삶의 역사가 전설로
백두산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조선족으로 묘사된다.이 「장생초」도 먹고 살기 위해 백두산기슭까지 찾아간 조선족을 대변한다.땅을 개간하여 목숨은 겨우 부지하지만 지주의 횡포는 날로 더해 간다는 내용은 거짓이 아닌 이주민들의 초기 생활상이었다.설화에서는 천우신조,이를 테면 천신만고 끝에 신선같은 노인,산신같은 노파를 만나게 되어 명줄을 잇게 하는 설화의 내용은 전설이 아니라 삶의 역사였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고난을 자포자기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면 하늘도 돕는다는 삶의 철학이 구전설화에 담겨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인생관은 비통을 낭만으로 승화할 기질을 타고 났다.낭만적 민족성은 슬픈 이야기도 웃음으로 바꿀 수 있다.백두산설화중에는 신화 전설만이 아니라 오락중심의 민담도 포함되어 있다.신화적 성격이 강한 내용을 민담으로 변이되어 구전하는 것으로 「술이 나오는 그림」이 있다.
○민담엔 교훈성 내포
「옛날 백두산에 한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가난해서 장가도 들지 못했다.추운 겨울 나무하러 숲으로 들어갔다.신음소리를 들었다.그는 움막속에서 곧 목숨이 걷힐 병약한 노인을 찾았다.그는 애써 마련한 자신의 나무로 방을 덥게하고 죽을 끓여 노인을 간병했다.그는 노인에게 바싹 붙어 사흘동안 간병을 했다.덕택으로 노인은 회복이 되었다.노인은 붓으로 송학도를 한폭 그려 주었다.다음날 그 움막을 찾았을 때는 움막도 노인도 흔적이 없었다.나무꾼은 어이없이 앉아 그림을 펴봤다.그림에는 샘물이 있었는데 나무꾼이 『이 샘물이 술이었음 좋겠다』고 말하는 순간 술이 되었다.나무꾼은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신선주를 팔아 부자가 되었다.한 구두쇠 영감이 이 그림을 탐내어 그림을 사려고 했다.강제로 빼앗아 갔다.그리고 많은 군중을 모으고 그림을 펴 기적이 일어날 것을 예고했지만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다.군중은 이 구두쇠 영감을 욕하고 돌아갔다.구두쇠는 관청에 고발했다.막대한 돈을 받고 엉터리 그림을 준 사기꾼을고발한 것이다.나무꾼이 옥에 갇히려는 순간 백발노인이 나타났다.관리와 구두쇠를 나무라고 나서 그림을 들자 그림속의 학이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나무꾼과 신선을 태우고 멀리 날아갔다.이때 청천벽력이 나더니 산이 무너져 사또와 구두쇠를 덮어버리고 말았다」.
교훈성이 내포된 설화지만 기적이 일어나는 그림에 대한 설화는 우리 주변에 많이 구전되고 있다.「그림속의 여인」「술이 나오는 표주박」등이 공통 모티브라고 할 수 있겠다.백두산설화가 백두산을 지키며 사는 우리 중국조선족들에게 항상 생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 수 없다.<최인학 인하대교수·비교민속학>
1994-12-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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