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날 남다른 감회의 이춘재 양양지국장

창간날 남다른 감회의 이춘재 양양지국장

조성호 기자 기자
입력 1994-11-22 00:00
수정 1994-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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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전령」 서울신문 사랑 34년/방안 가득 신문철… “훌륭한 당고”/출가한 자식도 애독자… 우리집은 「서울가족」/배달소년에 장학금지급 등 선행에도 앞장

초겨울 달이 시커먼 바다에 떨어지는 새벽,그는 집을 나선다.

방금 불어온 해풍에 그의 겨드랑이에서 진한 잉크 냄새가 발산된다.

신문 냄새다.서울신문이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겨드랑이에 두터운 신문뭉치를 끼고 있다.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팔장을 끼듯이….

강원도 양양군 남문1리 이춘재씨(70).

생애의 반인 34년을 그렇게 살아왔다.서울신문과 호흡을 같이 하며 함께 달려온 격동의 세월이었다.

창간 49주년을 맞는 그의 감회는 그래서 남다르다.

그의 방은 작은 서울신문 서고다.34년간의 서울신문이 월별로 묶여져 보관돼 있다.

비록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에 절어 빛은 바랬지만 역사의 숨소리를 생생히 담고 있다.

『서울신문 역사가 곧 우리 집의 역사입니다.저는 서울신문의 전령사지요』.그는 이렇게 말하며 출가한 자식들은 물론 친척들이 모두 서울신문 애독자라고 자랑한다.

서울신문과 이씨의 인연은 지난 61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버려진 신문뭉치를 보게 됐다.배달소년이 배달을 제대로 하지 않고 내동댕이친 것이었다. 제호는 서울신문.그는 한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자세히 일독을 했다.

차분하면서도 중심이 있는 양질의 신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언론에 대한 관심도 있던 터였다.57년 강원도 속초방송국 개국요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다음날 양양지국으로 달려갔다.지국 경영은 엉망이었다.그는 선뜻 10만환을 지불했다.쌀 20가마 값이었다.그리고 양양지국을 넘겨 받았다.

그날 이후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양양지역에 새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의 곁에는 늘 부인 김영숙씨(57)가 있다.배달소년들 또한 새벽을 함께 달리는 벗들이다.그래서 그는 항상 청년의 마음으로 산다.

이씨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으레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전해준다.

신문지국장이라면 새로운 얘기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요 자존심이다.마을 사람들은 그래서 이씨를 「춘풍」이라 부른다.그를 만나면 봄바람처럼 신선한 소식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의 자존심을 유지시켜 주는 비밀은 바로 서울신문이다.

서울신문때문에 얻은 덕망과 부는 사회에 돌려준다는 것이 그의 소박한 생활 철학이다.

그는 노인회 등에는 30여부를 무료로 배달한다.배달소년들 가운데 중·고교생에게는 등록금을 지급하고 있다.지금까지 34명이 장학금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했다.

경찰관·교사·은행원 등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찾아오는 이들을 볼때마다 그는 서울신문 가족으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한껏 느낀다.

이같은 선행으로 대통령표창 등 30여차례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열성이 대단하고 주민들 사이에 신망이 두텁다보니 신문 구독자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양양군 8천여 가구중 10%인 8백가구가 서울신문을 보고 있다.이 가운데 10여가구는 3대를 이어 내려오는 독자다.10∼20년간 정기구독하는 고정독자도 많다.

『서울신문이 상업주의에 쏠리지 않고 군형있는 신문을 만들다보니 고정독자들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게 서울신문 덕이라고 말하는 이씨의 모습은 겸손하기만 하다.

서울신문과 함께 하는 동안 4면이던 지면은 7차례나 늘어나 24∼32면이 됐다.월 구독료는 2백환에서 24회 올라 5천원이 됐다.

『서울신문이 날로 좋아진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우쭐해집니다.서울신문이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날까지 저의 작은 힘을 보탤 각오입니다』.

영원한 서울신문맨 이춘재씨.이렇게 말을 맺는 그의 얼굴 위로 아침 햇살이 찬란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서울신문의 도약을 기원하는 희망찬 동해의 일출이었다.<양양=조성호기자>
1994-11-2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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