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붓에 다시 먹을 적시며(박갑천칼럼)

몽당붓에 다시 먹을 적시며(박갑천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4-11-02 00:00
수정 1994-11-0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비거서남풍이라는 말이 있다.어느 샌지 모르게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음을 뜻하면서 쓰인다.서남풍은 토박이말로는 늦하늬(바람)또는 늦마라고 한다.뱃사람들만 썼던 것이 아니다.농사 짓는 사람도 쓴 말인데 이제 잊어들 간다.이익의 「성호사설」에 「완한의」(완한의:완은 늦,한의는 한의→하늬)또는 「완마」(완마:완은 늦,마는 마)라 한다고 써놓고 있는 걸 보면 그때도 이 배달말은 쓰였던 것임을 알겠다.달리 또 서늘바람(양풍)이라고도 한다.

이 칼럼이 지난 여름의 어느 더운날 『필자 사정에 의해 당분간 쉰다』는 보일락말락한 「알림」과 함께 늦하늬바람 꼴로 사라져 버렸다.무슨 「사정」이냐는 물음을 지금도 더러 받는다.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야불답백이라는 옛사람의 말을 그 대답에 갈음해 드리고자 한다.

어두운 밤에 하얗게 보이는 것은 물이니 밟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그렇건만 흰흙이지 설마 물이랴 싶은 경홀함으로 밟아 버렸던 것이라고나 할까.오만한 자기과신(과신)이 「필자사정」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 일이다.그러고서 서늘바람 부는 계절에 이번에는 비래서남풍식으로 되돌아왔다.

저 일두 정여창은 어느날 홀연히 늦하늬 같이 사라진다.그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3년동안 오경과 함께 성리학을 연구한 끝에 다시 늦하늬 같이 돌아온다.지절 높은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추강 남효온은 돌아가는 정치판에 대한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늦하늬 같이 사라진다.그는 무악산에 올라 목이 터져라 통곡하고서 되돌아온다.안정 신영희의 「사우언행록」에 적혀 내려오는 얘기이다.

오늘에 늦하늬 같이 사라졌던 평범한 시정인은 온축을 위한 것도 그렇다고 무슨 지절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꼼짝 못한채 엎드려 있어야만 했던 40년 직장생활에 눌린 기나 펴본답시고 태평하게 싸돌아다닌 것이 고작이었다.국내로 국외로.그러고서 돈 떨어지고 망건 해진 난봉꾼 탕아가 본가로 돌아오듯 옛자리로 들어선다.조강지처는 역시 따뜻하다.강짜없이 감싸 주는 것이 아닌가.

몇달 쉰 때문일까.잿길 오르던 목탄버스 고장났다가 엔진 시동 다시 거는듯한 얼떨떨함이 있다.경계해야 할 일은 요동시의 어리석음이다.정신을 가다듬어 독자와 함께 세상일을 생각해보는 난으로 엮어가고자 한다.
1994-11-02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