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가는 길에 성수대교 사건을 보고 일본에 간 필자는 새삼스럽게 일본을 보았다.항상 지진이라는 재해를 머리에 두고 사는 일본,그러면서도 일찍이 고밀도 도시개발을 해온 일본,아마도 그들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해때문에 또한 오직 사람만이 자원이라는 경제적 긴박감 때문에 그렇게 기술이 발전했을 터이다.
그러한 일본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목조건물의 방화문제,지진의 피해,70년대까지도 지하아케이드의 대형화재를 겪었다.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방재는 도시계획의 주요부문이 되었다.기술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의식 때문에 관료들의 기술섭렵도는 대단하다.
우리는 어떠한가.안보는 있지만 방재는 없다.정치는 있지만 기술은 없다.행정관료는 스타이고 기술관료는 엑스트라이다.건설 호황속의 기술개발 불황이다.건설은 있지만 사후관리는 없다.밀어붙이기에는 능해도 챙기기에는 약하다.끓어오르는 열정은 남부럽지 않아도 끈기는 어느새 지나간 덕목이 되었다.짧은 전투에 대한 승부욕은 강하면서도 긴긴 전쟁에 대한 전략은 미흡하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과거지사를 탓할 수도 없다.아마도 우리 사회 전체가,이 시대가 책임을 져야할 일이다.늦었다고 할 필요도 없다.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아마도 가장 빠른 때일 것이다.
관건은 이제부터이다.오히려 역량은 위기를 통해 커지고 위기관리수습을 통해 나타난다.무엇이 필요할까.세간에서는 무언가 획기적이고 모든 문제를 시원하게 풀어줄 정책을 기대하겠지만 이러한 기대가 더 문제이다.오늘의 구조적 문제는 단기간에 해소될 수도,현재의 정권이 모두 풀 수도 없다는 냉철하고 현실적인 시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근대국가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그러한 시스템 구축이란 뚜렷한 비전과 효과적 전략,건전한 상식,그리고 해를 거듭하는 일관된 시행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정치권·관료·민간·국민 할 것 없이 모두 인식해야 한다.
근대국가의 냉철한 합리주의는 일관되게 지켜져야 한다.정서에 호소하는 정치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자제할 일이다.성수대교의 재공사 헌납이란 도대체 뒤로 가는 발상이라 더욱 부끄러울 따름이다.필요한 것은 오히려 합리적인 책임주의가 아닌가.
현장중심·내용중심·기술중심의 합리주의는 더더욱이 필요하다.도대체 무엇이 실적이 되어야 하는가? 예산확보·예산절감·수주총액·공사건수·공기단축이 실적이 되는 합리적 기준은 무엇인가? 행정소요시간을 아끼고 실제 일할 시간을 확보하려면? 형식적 감사기준 대신 내용적인 기준을 마련하려면? 현장에서 지킬 수 없는 시방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은 어떻게 지양할 것이며,도대체 시중의 현실적 경비는 어떻게 산정할 것이며,경비절감의 기준은 무엇이며,성능판단의 평가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이 모든 일이 기술판단력을 필요로 한다.질높은 기술관료의 폭넓은 활용은 필수적이다.도대체 현장내용을 모르면서,갈수록 첨단화되고 복합적인 기술내용을 모르면서,더구나 국제적 수준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없이 과연 어떻게 종합대책과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단 말인가.문구로서 완벽한 종합정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관된 실효성을 가지는 정책을 가지려면 말이다.이들이 나서서 건설확장시대에서 정비유지시대로,양적시대에서 질적시대로 넘어가는 오늘날 필요한 조직시스템과 행정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려면 말이다.
기술우위가 결정하는 21세기.정치력도 경제력도 삶의 질도 문화역량도 기술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21세기.아마도 이것을 절실하게 배우느라 우리는 이렇게도 아픈 경험을 하는 것이리라.<도시계획 PD·서울포럼 대표)
그러한 일본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목조건물의 방화문제,지진의 피해,70년대까지도 지하아케이드의 대형화재를 겪었다.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방재는 도시계획의 주요부문이 되었다.기술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의식 때문에 관료들의 기술섭렵도는 대단하다.
우리는 어떠한가.안보는 있지만 방재는 없다.정치는 있지만 기술은 없다.행정관료는 스타이고 기술관료는 엑스트라이다.건설 호황속의 기술개발 불황이다.건설은 있지만 사후관리는 없다.밀어붙이기에는 능해도 챙기기에는 약하다.끓어오르는 열정은 남부럽지 않아도 끈기는 어느새 지나간 덕목이 되었다.짧은 전투에 대한 승부욕은 강하면서도 긴긴 전쟁에 대한 전략은 미흡하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과거지사를 탓할 수도 없다.아마도 우리 사회 전체가,이 시대가 책임을 져야할 일이다.늦었다고 할 필요도 없다.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아마도 가장 빠른 때일 것이다.
관건은 이제부터이다.오히려 역량은 위기를 통해 커지고 위기관리수습을 통해 나타난다.무엇이 필요할까.세간에서는 무언가 획기적이고 모든 문제를 시원하게 풀어줄 정책을 기대하겠지만 이러한 기대가 더 문제이다.오늘의 구조적 문제는 단기간에 해소될 수도,현재의 정권이 모두 풀 수도 없다는 냉철하고 현실적인 시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근대국가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그러한 시스템 구축이란 뚜렷한 비전과 효과적 전략,건전한 상식,그리고 해를 거듭하는 일관된 시행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정치권·관료·민간·국민 할 것 없이 모두 인식해야 한다.
근대국가의 냉철한 합리주의는 일관되게 지켜져야 한다.정서에 호소하는 정치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자제할 일이다.성수대교의 재공사 헌납이란 도대체 뒤로 가는 발상이라 더욱 부끄러울 따름이다.필요한 것은 오히려 합리적인 책임주의가 아닌가.
현장중심·내용중심·기술중심의 합리주의는 더더욱이 필요하다.도대체 무엇이 실적이 되어야 하는가? 예산확보·예산절감·수주총액·공사건수·공기단축이 실적이 되는 합리적 기준은 무엇인가? 행정소요시간을 아끼고 실제 일할 시간을 확보하려면? 형식적 감사기준 대신 내용적인 기준을 마련하려면? 현장에서 지킬 수 없는 시방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은 어떻게 지양할 것이며,도대체 시중의 현실적 경비는 어떻게 산정할 것이며,경비절감의 기준은 무엇이며,성능판단의 평가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이 모든 일이 기술판단력을 필요로 한다.질높은 기술관료의 폭넓은 활용은 필수적이다.도대체 현장내용을 모르면서,갈수록 첨단화되고 복합적인 기술내용을 모르면서,더구나 국제적 수준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없이 과연 어떻게 종합대책과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단 말인가.문구로서 완벽한 종합정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관된 실효성을 가지는 정책을 가지려면 말이다.이들이 나서서 건설확장시대에서 정비유지시대로,양적시대에서 질적시대로 넘어가는 오늘날 필요한 조직시스템과 행정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려면 말이다.
기술우위가 결정하는 21세기.정치력도 경제력도 삶의 질도 문화역량도 기술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21세기.아마도 이것을 절실하게 배우느라 우리는 이렇게도 아픈 경험을 하는 것이리라.<도시계획 PD·서울포럼 대표)
1994-10-3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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