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부터 평사원까지 똑같은 책상/파티 초청인사 모시고 온 기사도 한자리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연변이나 흑룡강성등 중국 동북지방을 순회취재하다보면 여러가지 생소한 경험을 하게된다.예를 들어 손님으로 초청돼 가보면 이미 배가 부른데도 계속 요리가 쏟아져나와 요리접시가 3중,4중으로 쌓여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접대에 이들 인정의 훈훈함을 느낄수도 있고 맥주에 밥을 말아먹는 모습에는 넋을 잃고 쳐다보며 이국의 정취에 흠뻑 젖어들기도한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경험중의 하나는 운전기사에 관한 사회적 대우였다.한번은 우리 기자 일행이 한 조선족 신문사의 사장단과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사장 부사장을 비롯,3∼4명의 고위 간부들이 참석했는데 그 중 한사람은 약간 남루한 옷차림에 자기소개도 없이 조용히 식사만 들고 있었다.식사도중 계속해서 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했었는데,식사후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나눈뒤에 보니 그는 사장단이 탈 차량의 운전석으로 제빨리 들어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곳에서는 사장이든 시장이든 고위층이 귀빈을 모시고 만찬을 할 경우 운전기사도 한자리 차지한다는 것이었다.과연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로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나 개혁개방이 앞서가는 대도시에서는 좀 다른 습관이 생겨나고 있었다.
처음 북경에 근무했을 당시 놀랬던 일중의 하나는 중국인 손님을 저녁식사에 초대했을때 이 손님을 모시고 온 중국인 운전기사가 자꾸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빴는데 반대로 우리 한국특파원들이 초청을 받아 어떤 모임에 갔을 경우 우리를 태운 운전사들에게 저녁식사값을 충분히 줬는데도 이들은 우리를 초청한 사람을 찾아내 저녁값을 또 받아내는 것이었다.나중에 알고보니 초청자측이 상대편 운전사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든지 아니면 식사값을 주는 것은 확고부동한 관례로 굳어있었다.그래서 어느 기관이나 기업체가 만찬관련 행사에 초청장을 보낼때 보면 반드시 운전기사용 식권을 별도로 보내든지 아니면 기사가 식사할 장소를 알려주곤 했다.
사회주의중국에 살면서 그들의 평등사상 추구에 대한 집념을 여러 군데에서 읽을 수 있었다.우선 어느 기관에 들러 이들의 사무실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도대체 누가 과장이고 누가 부장이며 누가 평직원인지 구분 할 수가 없었다.의자나 책상의 크기와 모양이 상하 구분없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한번은 외국인 학생들의 교육을 전담하는 북경 55중학에 가서 교장실에 들어갔었다.한국 같으면 큼직한 교장 책상 하나만 있을텐데 이곳에는 책상 두개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었다.모양새도 수수하고 크기도 두개가 똑같았으며 의자마저 같은 것이었다.두사람의 외모를 봐도 누가 교장인지 구분이 되지않아 아무한테나 가서 당신이 교장이냐고 묻자 앞사람을 가리켰다.이 사람은 후에 보니 영어교사였다.
북경대학교의 한 연구소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연구소 부소장 방이라는 말만 듣고 문을 열어보니 똑같은 크기의 책상이 3∼4개쯤 보여 잘못 들어온게 아닌가하고 잠시 머뭇거렸다.그러자 한 귀퉁이에 앉은 사람이일어서면서 자기가 부소장인데 서울신문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주택구조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주택의 크기를 결정하는 요인도 직장에따라 다양하지만 식구들이 몇명이냐가 직위의 높낮이보다 더 중요시 되는것 같았다.정부기관의 부장급(장관급)이상의 영도자들이 산다는 주택들은 우리나라 호화주택들 정도로 규모가 큰 경우를 볼수 있었으나 국장급이하는 거의가 비슷해 보였다.도시 아파트들의 경우 대체로 10∼15평 정도로 방 1∼2개에 조그만 거실·부엌과 화장실등으로 구성되는게 보통이다.
그래서 하루는 한 중국기자에게 『사장과 평직원의 의자 책상이 똑같고 주택구조마저 비슷하다면 도대체 누가 사장이 되기위해 땀을 흘리고,누가 국장이 되기위해 머리를 싸매겠는가?』고 묻자 『우리도 평등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그래서 지금 개혁개방을 하고 있고 또 부자들의 출현을 용인하고 있지않은가』고 설명했다.<북경특파원>
조선족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연변이나 흑룡강성등 중국 동북지방을 순회취재하다보면 여러가지 생소한 경험을 하게된다.예를 들어 손님으로 초청돼 가보면 이미 배가 부른데도 계속 요리가 쏟아져나와 요리접시가 3중,4중으로 쌓여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접대에 이들 인정의 훈훈함을 느낄수도 있고 맥주에 밥을 말아먹는 모습에는 넋을 잃고 쳐다보며 이국의 정취에 흠뻑 젖어들기도한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경험중의 하나는 운전기사에 관한 사회적 대우였다.한번은 우리 기자 일행이 한 조선족 신문사의 사장단과 저녁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사장 부사장을 비롯,3∼4명의 고위 간부들이 참석했는데 그 중 한사람은 약간 남루한 옷차림에 자기소개도 없이 조용히 식사만 들고 있었다.식사도중 계속해서 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 했었는데,식사후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나눈뒤에 보니 그는 사장단이 탈 차량의 운전석으로 제빨리 들어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곳에서는 사장이든 시장이든 고위층이 귀빈을 모시고 만찬을 할 경우 운전기사도 한자리 차지한다는 것이었다.과연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로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나 개혁개방이 앞서가는 대도시에서는 좀 다른 습관이 생겨나고 있었다.
처음 북경에 근무했을 당시 놀랬던 일중의 하나는 중국인 손님을 저녁식사에 초대했을때 이 손님을 모시고 온 중국인 운전기사가 자꾸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빴는데 반대로 우리 한국특파원들이 초청을 받아 어떤 모임에 갔을 경우 우리를 태운 운전사들에게 저녁식사값을 충분히 줬는데도 이들은 우리를 초청한 사람을 찾아내 저녁값을 또 받아내는 것이었다.나중에 알고보니 초청자측이 상대편 운전사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든지 아니면 식사값을 주는 것은 확고부동한 관례로 굳어있었다.그래서 어느 기관이나 기업체가 만찬관련 행사에 초청장을 보낼때 보면 반드시 운전기사용 식권을 별도로 보내든지 아니면 기사가 식사할 장소를 알려주곤 했다.
사회주의중국에 살면서 그들의 평등사상 추구에 대한 집념을 여러 군데에서 읽을 수 있었다.우선 어느 기관에 들러 이들의 사무실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도대체 누가 과장이고 누가 부장이며 누가 평직원인지 구분 할 수가 없었다.의자나 책상의 크기와 모양이 상하 구분없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한번은 외국인 학생들의 교육을 전담하는 북경 55중학에 가서 교장실에 들어갔었다.한국 같으면 큼직한 교장 책상 하나만 있을텐데 이곳에는 책상 두개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었다.모양새도 수수하고 크기도 두개가 똑같았으며 의자마저 같은 것이었다.두사람의 외모를 봐도 누가 교장인지 구분이 되지않아 아무한테나 가서 당신이 교장이냐고 묻자 앞사람을 가리켰다.이 사람은 후에 보니 영어교사였다.
북경대학교의 한 연구소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연구소 부소장 방이라는 말만 듣고 문을 열어보니 똑같은 크기의 책상이 3∼4개쯤 보여 잘못 들어온게 아닌가하고 잠시 머뭇거렸다.그러자 한 귀퉁이에 앉은 사람이일어서면서 자기가 부소장인데 서울신문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주택구조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주택의 크기를 결정하는 요인도 직장에따라 다양하지만 식구들이 몇명이냐가 직위의 높낮이보다 더 중요시 되는것 같았다.정부기관의 부장급(장관급)이상의 영도자들이 산다는 주택들은 우리나라 호화주택들 정도로 규모가 큰 경우를 볼수 있었으나 국장급이하는 거의가 비슷해 보였다.도시 아파트들의 경우 대체로 10∼15평 정도로 방 1∼2개에 조그만 거실·부엌과 화장실등으로 구성되는게 보통이다.
그래서 하루는 한 중국기자에게 『사장과 평직원의 의자 책상이 똑같고 주택구조마저 비슷하다면 도대체 누가 사장이 되기위해 땀을 흘리고,누가 국장이 되기위해 머리를 싸매겠는가?』고 묻자 『우리도 평등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그래서 지금 개혁개방을 하고 있고 또 부자들의 출현을 용인하고 있지않은가』고 설명했다.<북경특파원>
1994-10-2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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