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기창 개조… 집단 「예술창」으로
한국인 화가 20여명이 파리근처 병기창을 점령한 것은 91년말이었다.프랑스 심장부에서 한국인들의 무장봉기가 있은 것은 아니고 한국인 화가들이 합심하여 프랑스정부로부터 얻어낸 집단아틀리에가 실내면적 5천㎡(약1천5백평)의 거대한 옛 탱크수리창이었다는 것이 사건의 진상이다.어쨌든 쾌거였다.
이 집단의 이름은 소나무회.회원들은 나이가 30대초반에서 50대초반에 걸치며 화가뿐만 아니라 사진·조각·설치미술 쪽의 사람들도 있다.이 회는 프랑스인들과 이탈리아·미국·일본·중국·캐나다·헝가리·루마니아인 등 외국인들도 회원으로 받아들여 국제성을 확보했다.병기창 접수 때인 초기에는 회원이 한국인 26명,외국인 21명이었다.그동안 부분적 변동은 있었지만 사뭇 비슷한 인원수를 지켜오고 있다.
센강변의 이 집단아틀리에는 파리도심에서 차로 20분쯤 되는 가까운 곳에 있다.이시 레 물리노시의 캐 드 스탈린그라드 247번지가 그 주소다.철골구조에 벽돌벽을 쌓은 이 공장용 건물은 에펠탑으로 유명한 에펠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탱크수리창으로 쓰던 군이 철수하면서 국방부 소유인 이 건물을 이시 레 물리노시가 관리하게 되었다.어떤 개인이 세를 들어 실내보트장을 겸한 영화관을 잠시 운영했으나 재미를 보지 못했다.영화관이 나가게 되자 파리의 한국인 화가들이 소나무회를 조직한 뒤 당국과 교섭을 벌여 무료에 가까운 상징적인 집세만을 내고 건물을 통째로 빌리는 데 성공했다.그리고는 회원수만큼 칸을 막아서 각자의 아틀리에를 만들었다.
소나무회는 병기창이라는 Arsenal과 예술이라는 Art를 결합한 Artsenal을 이 건물의 이름으로 삼았다.「아르스날」이라는 발음은 그대로면서 병기창이 예술창이 된 것이다.이들은 입주기념 첫 공동전시회를 이곳에서 92년2월에 열었으며 이는 거대한 예술창의 연례적인 전원 참여 행사가 되었다.이때는 시장이 나와 축하한다.94년의 2월의 행사에는 군이 소형탱크 1대를 보내 구경시켜서 어린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소나무회는 파리의 화가집단중 가장 크다.그들의 집단아틀리에 또한 프랑스에서 가장 큰 것이다.회원들은 대부분 활발히 작업하고 있는 인물들이며 그중에는 두 사람의 미술대학교수도 있다.외부와의 연락업무를 담당하는 상임직원 1명이 근무한다.
아르스날은 이제 미술에 관심있는 이가 파리를 방문하면 한번씩 둘러보는 명소가 되었다.소나무회 또한 그 이름이 점차 프랑스의 예술애호가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후원자까지 붙게 되었다.프랑스의 보험관계회사인 앵젝사스의 기 콤회장이 파리시내 15구 마드무아젤가에 「아르스날 파리」라는 소나무회 전용 상설전시장을 마련해주어 94년2월부터 회원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아르스날의 출현과 그 발전은 파리 한국인 미술가들의 패기와 프랑스의 독특한 예술지원분위기가 잘 어울려 이루어진 것이다.한국인 화가들의 시도는 엉뚱하다고 할 만한 것이었으나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프랑스 국방부와 이시 레 물리노시청 관리들의 포용력 또한 프랑스에서나 있음직한 일이었다.「메세나」라는 말로 일컬어지는 프랑스기업들의 예술후원활동도 의욕을 북돋워주었다.
소나무회 회원들의 활발한 작업의 결실은요즘 잦아진 국내 전시로도 확인되고 있다.정재규·김종학씨가 올 여름에 국내 개인전을 각각 열었다.또 윤봉환씨의 개인전이 서울 유나화랑에서 9월1일부터 14일까지,김형기·유봉상·이영배·홍순명씨가 프랑스인회원 장 드 피에파프,프랑수아즈 니에 등과 함께 여는 설치미술 위주의 6인전이 서울 갤러리 아트빔에서 9월3일부터 10월7일까지 있다.대구에서는 권순철씨등 한국인 5명과 외국인 5명이 함께 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소나무회회장은 이 집단을 주도하는 한국인 쪽에서 대대로 맡고 있는데 초대회장은 권순철씨였으며 이영배씨를 거쳐 현재는 홍순명씨가 잇고 있다.소나무회에 현재 회원으로 있거나 한때 있었던 그밖의 한국인 예술가들은 곽수영·김남용·김선태·김성태·김태종·김평준·문순우·박동일·박승순·백진·변창건·변충원·신혜경·이상우·이영춘·유규리·유유리·장승택·조돈영·조용신·최예희·최준걸씨 등이다.<파리특파원>
한국인 화가 20여명이 파리근처 병기창을 점령한 것은 91년말이었다.프랑스 심장부에서 한국인들의 무장봉기가 있은 것은 아니고 한국인 화가들이 합심하여 프랑스정부로부터 얻어낸 집단아틀리에가 실내면적 5천㎡(약1천5백평)의 거대한 옛 탱크수리창이었다는 것이 사건의 진상이다.어쨌든 쾌거였다.
이 집단의 이름은 소나무회.회원들은 나이가 30대초반에서 50대초반에 걸치며 화가뿐만 아니라 사진·조각·설치미술 쪽의 사람들도 있다.이 회는 프랑스인들과 이탈리아·미국·일본·중국·캐나다·헝가리·루마니아인 등 외국인들도 회원으로 받아들여 국제성을 확보했다.병기창 접수 때인 초기에는 회원이 한국인 26명,외국인 21명이었다.그동안 부분적 변동은 있었지만 사뭇 비슷한 인원수를 지켜오고 있다.
센강변의 이 집단아틀리에는 파리도심에서 차로 20분쯤 되는 가까운 곳에 있다.이시 레 물리노시의 캐 드 스탈린그라드 247번지가 그 주소다.철골구조에 벽돌벽을 쌓은 이 공장용 건물은 에펠탑으로 유명한 에펠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탱크수리창으로 쓰던 군이 철수하면서 국방부 소유인 이 건물을 이시 레 물리노시가 관리하게 되었다.어떤 개인이 세를 들어 실내보트장을 겸한 영화관을 잠시 운영했으나 재미를 보지 못했다.영화관이 나가게 되자 파리의 한국인 화가들이 소나무회를 조직한 뒤 당국과 교섭을 벌여 무료에 가까운 상징적인 집세만을 내고 건물을 통째로 빌리는 데 성공했다.그리고는 회원수만큼 칸을 막아서 각자의 아틀리에를 만들었다.
소나무회는 병기창이라는 Arsenal과 예술이라는 Art를 결합한 Artsenal을 이 건물의 이름으로 삼았다.「아르스날」이라는 발음은 그대로면서 병기창이 예술창이 된 것이다.이들은 입주기념 첫 공동전시회를 이곳에서 92년2월에 열었으며 이는 거대한 예술창의 연례적인 전원 참여 행사가 되었다.이때는 시장이 나와 축하한다.94년의 2월의 행사에는 군이 소형탱크 1대를 보내 구경시켜서 어린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소나무회는 파리의 화가집단중 가장 크다.그들의 집단아틀리에 또한 프랑스에서 가장 큰 것이다.회원들은 대부분 활발히 작업하고 있는 인물들이며 그중에는 두 사람의 미술대학교수도 있다.외부와의 연락업무를 담당하는 상임직원 1명이 근무한다.
아르스날은 이제 미술에 관심있는 이가 파리를 방문하면 한번씩 둘러보는 명소가 되었다.소나무회 또한 그 이름이 점차 프랑스의 예술애호가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후원자까지 붙게 되었다.프랑스의 보험관계회사인 앵젝사스의 기 콤회장이 파리시내 15구 마드무아젤가에 「아르스날 파리」라는 소나무회 전용 상설전시장을 마련해주어 94년2월부터 회원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아르스날의 출현과 그 발전은 파리 한국인 미술가들의 패기와 프랑스의 독특한 예술지원분위기가 잘 어울려 이루어진 것이다.한국인 화가들의 시도는 엉뚱하다고 할 만한 것이었으나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프랑스 국방부와 이시 레 물리노시청 관리들의 포용력 또한 프랑스에서나 있음직한 일이었다.「메세나」라는 말로 일컬어지는 프랑스기업들의 예술후원활동도 의욕을 북돋워주었다.
소나무회 회원들의 활발한 작업의 결실은요즘 잦아진 국내 전시로도 확인되고 있다.정재규·김종학씨가 올 여름에 국내 개인전을 각각 열었다.또 윤봉환씨의 개인전이 서울 유나화랑에서 9월1일부터 14일까지,김형기·유봉상·이영배·홍순명씨가 프랑스인회원 장 드 피에파프,프랑수아즈 니에 등과 함께 여는 설치미술 위주의 6인전이 서울 갤러리 아트빔에서 9월3일부터 10월7일까지 있다.대구에서는 권순철씨등 한국인 5명과 외국인 5명이 함께 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소나무회회장은 이 집단을 주도하는 한국인 쪽에서 대대로 맡고 있는데 초대회장은 권순철씨였으며 이영배씨를 거쳐 현재는 홍순명씨가 잇고 있다.소나무회에 현재 회원으로 있거나 한때 있었던 그밖의 한국인 예술가들은 곽수영·김남용·김선태·김성태·김태종·김평준·문순우·박동일·박승순·백진·변창건·변충원·신혜경·이상우·이영춘·유규리·유유리·장승택·조돈영·조용신·최예희·최준걸씨 등이다.<파리특파원>
1994-09-0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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