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1의 세상/신재인 원자력연 소장(서울광장)

마이너스 1의 세상/신재인 원자력연 소장(서울광장)

신재인 기자 기자
입력 1994-07-09 00:00
수정 1994-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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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날이 그렇게 빨리 우리 앞에 나타날 줄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종교적인 믿음이 없는 일반 사람들은 마치 현재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갑작스런 미래의 상황이 우리 눈앞에 전개 될 경우에는 당황하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더욱이 그는 아직 젊고 건강했으며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사회사업을 했기 때문에 그날이 우리에게 던져준 아픔은 더없이 크고 예리했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곧고 굽지 않았다.남이 행하는 부정한 일은 보지못했고 그것을 못본체하고 회피해 버리는 우리의 허약한 자세도 그는 크게 비난했다.또 그는 과거의 틀에 얽매어서 새롭게 변화되지 못하는 사람,교회·사회·국가에 대해서도 매우 안타까워 했다.그러면서 실제로 그는 조그마한 어느 일이라도 새롭게 바꾸어 보려고 혼신의 정성을 쏟아 부었다.교회에서 매주 나누어주는 주보의 양식이나 예배절차,예배후 신도들끼리 나누는 친교의 시간까지 새롭게 개혁을 해보기 위해서 노력을 했으며 그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대해서는 온 열성을 바쳐서 실험을 해보고 그 결과를 연합회의에 발표해서 다른 복지단체에서도 참고하도록 도왔다.예를들면 고아들이 어느 연령에 차면 개별방을 주어 독립심을 키우고 방학이면 후원자의 집에 민박시켜 가정의 따뜻함도 가르쳐 보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졸업반에게는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주고 운전실습도 시켜서 장래 고아원을 떠나 사회생활을 무리없이 할 수 있도록 키워냈다.원생들의 이력관리도 일찍 개인용 컴퓨터를 들여놓아 하나하나 세밀히 관찰한 기록과 교육훈련 내용을 그안에 담아 놓았다.정치과를 졸업한 그가 컴퓨터를 설치하고 배우고 거기에서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쓰고 할 정도의 실력을 얻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지만 그가 보인 맑은 웃음과 희열은 옆에서 보는 우리에게도 무척 고았다.그는 친구들에게도 매우 자상해서 남이 아픈곳은 같이 품어주고 소원해진 친구들은 주기적으로 전화하고 불러 만나게 함으로써 맏형 같은 노릇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개인적인 고민도 있었고 가정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은 한번도 그일로 주변사람들에게 감정적인 표현을 하거나 싫은 소리를 한적이 없었다.그저 다정하고 법이 없어도 사는 사람,곧고 그러나 부드러운 그러한 사람이었다.그러나 그날 그는 우리를 영원히 눈을 감은채 홀연히 병원의 응급실로 불러들였다.그가 운영하는 고아원의 옥상에서 장마비를 대비해서 방수공사를 몸소 하다가 추락한 것이다.그다음 다음날에는 우리와 그곳에서 복지시설 운영계획을 보고하는 회의를 열 예정이었고 그래서 더욱 그는 손님맞이 단장을 하느라 서둘러 새벽에 방수공사를 강행했었다 한다.그리고 그는 갑자기 우리앞에 잔잔히 웃음을 띈 그러나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우리가 받았던 처음 느낌은 아무 것도 없었다.그는 피곤해서 누워있으며 조금후면은 일어나서 내이름을 부르면서 다가와서 친구걱정도 하고 돈걱정도 하고 어렵게 꼬여가는 우리 원자력계의 일도 걱정해 줄 것 같았다.응급실의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중환자실에서 한동안 혈압이 급강하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 옆에 있을 것 같은 그가 영안실로 내려간뒤에야 이제는 우리옆에 그가 없다는 사실을 현실로 실감하기 시작했다.믿음직스럽고 내가 어려울 때면 언제나 옆에서 같이 힘을 모아 주던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이제는 가장 먼 어느 곳으로 홀연히 떠나버린 것이다.그래서 내가 그 이전까지 보아왔고 생활했던 세상이 이제는 하나가 빠져버린 마이너스 일의 세상이 되어버린 것을 알았다.그리고 이 세상은 항상 지금처럼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마이너스 이도 되고 마이너스 삼도 되는 세상이라는,그리고 최종에 가서는 내 자신이 그 안에 들어가는 마이너스 모든 것이 되고마는 세상이라는 느낌이 가슴속 깊이 각인이 되었다.그렇게 보는 세상은 매우 순결해 보였고 거리에 서서 다정하게 얘기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천진난만하게 걸어다니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그리고 악을 쓰며 부를 찾고 권세를 바라보며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거품을 입에 무는 주변의 사람들은 측은해 보이고 불쌍해 보이고 안쓰러워 보였다.그것이 마이너스 일의 세상을 체험해 본 그날의느낌이었다.

1994-07-0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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