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이제야 원 풀었다” 눈물/서박사 93세질녀 휄체어 타고 참석/배재고생 70명 교복차림 식장도열
○…서재필선생의 종손 희원씨(70)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유해봉환을 시도했으나 정부측의 의지가 부족해 실패했었다』며 『이번 두분의 유해봉환은 문민정부들어 해외에서 떠돌고 있는 애국지사들의 국내봉환에 이은 것이라 더욱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LA에 거주하다 이번 안장식에 참석차 귀국한 전명운의사의 둘째딸 경련씨(71)는 『아버지의 유해가 수십년동안 해외에 묻혀있다 정부의 배려로 좋은 장소에 유택을 마련하게 돼 더할 나위없이 기쁘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서재필선생의 질녀 정석씨(93)는 노구로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채 이날 안장식에 참석해 주변의 눈길을 끌었다.
정석씨는 『선생은 약관 20세의 나이로 당시 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에 중심인물로 활약했었다』고 말한 뒤 『그러나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아버지를 비롯한 형제들이 일경에 끌려가 죽임을 당했고 선생의 본부인 광산 김씨는 약을 먹고자결하는등 일가족이 모두 불행을 겪었다』며 아픈 과거를 회상.
○…배재고 학생 70여명은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안장식이 시작되기 1시간여전에 국립묘지에 도착,안장식이 거행된 현충문앞 잔디밭에 나란히 도열.
배재고 박언서교장(61)은 『서재필선생은 갑신정변후 미국에 유학한 뒤 1895년에 귀국,배재고의 전신인 「배재학당」에서 교편을 잡아 지리·역사·정치학을 가르쳤다』며 『강의에만 만족치말고 토론회를 열어 참지식을 얻으라는 선생의 말씀이 배재고 1백년사에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박은호기자>
○…서재필선생의 종손 희원씨(70)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유해봉환을 시도했으나 정부측의 의지가 부족해 실패했었다』며 『이번 두분의 유해봉환은 문민정부들어 해외에서 떠돌고 있는 애국지사들의 국내봉환에 이은 것이라 더욱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LA에 거주하다 이번 안장식에 참석차 귀국한 전명운의사의 둘째딸 경련씨(71)는 『아버지의 유해가 수십년동안 해외에 묻혀있다 정부의 배려로 좋은 장소에 유택을 마련하게 돼 더할 나위없이 기쁘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서재필선생의 질녀 정석씨(93)는 노구로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채 이날 안장식에 참석해 주변의 눈길을 끌었다.
정석씨는 『선생은 약관 20세의 나이로 당시 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에 중심인물로 활약했었다』고 말한 뒤 『그러나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아버지를 비롯한 형제들이 일경에 끌려가 죽임을 당했고 선생의 본부인 광산 김씨는 약을 먹고자결하는등 일가족이 모두 불행을 겪었다』며 아픈 과거를 회상.
○…배재고 학생 70여명은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안장식이 시작되기 1시간여전에 국립묘지에 도착,안장식이 거행된 현충문앞 잔디밭에 나란히 도열.
배재고 박언서교장(61)은 『서재필선생은 갑신정변후 미국에 유학한 뒤 1895년에 귀국,배재고의 전신인 「배재학당」에서 교편을 잡아 지리·역사·정치학을 가르쳤다』며 『강의에만 만족치말고 토론회를 열어 참지식을 얻으라는 선생의 말씀이 배재고 1백년사에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박은호기자>
1994-04-0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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