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시 시중구 연화동38.좁고 가파른 계단을 사이에 두고 낡고 퇴락한 건물들이 늘어서있다.이 가운데 허름한 2층 벽돌건물 4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정착지였던 중경 임정청사다.중경시 당국은 지난 92년 이일대에 아파트를 건립하기위해 기존건물을 철거할 계획을 세웠었다.자칫했으면 재개발계획에 밀려 사라질뻔했던 이 건물엔 당시 33가구의 중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하면 우리는 상해만 생각하기 쉽다.그러나 3·1운동직후인 19 19년 상해에 수립된 임시정부는 윤봉길의사의 강구공원 폭탄의거이후 일제의 탄압에 쫓겨 32년 절강성 항주로 옮긴다.그리고 중·일전쟁의 전황에따라 진강·장사·광주등을 전전하면서 41년 마침내 중국의 오지,중경으로 피난한다.30년대말에는 18개월동안 6곳을 전전하였으니 그 신산한 고통이야 오죽했을까.「백범 일지」에는 사무실 집세 30원을 못내 집주인에게 여러번 송사를 당했다는 기록도 보인다.「임정」의 간판을 메고 고달픈 유랑의 길을 거듭한 끝에 40년 9월 마지막으로 당도한곳이 중경.이곳에서 광복을 맞기까지 임정은 조직을 정비하고 무장병력을 양성하는등 적극적인 대일항전태세를 갖춘다.
임정은 여러 독립단체를 통합하고 광복군을 창설하는등 중국대륙에 기세를 드높인다.광복군 창립식에는 장개석총통을 비롯한 중국의 요인 수백명이 참석할 정도였다.종전을 앞두고 버마전선에 광복군이 투입되었으며 본토수복을 위한 OSS특공대원이 극비리에 양성되기까지 했다.
중경은 우리 임정의 마지막 정착지이자 항일투쟁의 최후거점이다.우리민족에게는 얼마나 큰 역사의 무게와 의미를 지니는 곳인가.무심히 버려둘수 없는 곳이다.이 중경임정청사가 한·중정부에 의해 공동으로 내년 광복절까지 복원된다고 한다.김일성 문민정부 출범이후 상해임시청사에 이은 두번째의 민족정기 복원공사이다.멀리 이역에서 임정의 역사가 살아숨쉬게 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하면 우리는 상해만 생각하기 쉽다.그러나 3·1운동직후인 19 19년 상해에 수립된 임시정부는 윤봉길의사의 강구공원 폭탄의거이후 일제의 탄압에 쫓겨 32년 절강성 항주로 옮긴다.그리고 중·일전쟁의 전황에따라 진강·장사·광주등을 전전하면서 41년 마침내 중국의 오지,중경으로 피난한다.30년대말에는 18개월동안 6곳을 전전하였으니 그 신산한 고통이야 오죽했을까.「백범 일지」에는 사무실 집세 30원을 못내 집주인에게 여러번 송사를 당했다는 기록도 보인다.「임정」의 간판을 메고 고달픈 유랑의 길을 거듭한 끝에 40년 9월 마지막으로 당도한곳이 중경.이곳에서 광복을 맞기까지 임정은 조직을 정비하고 무장병력을 양성하는등 적극적인 대일항전태세를 갖춘다.
임정은 여러 독립단체를 통합하고 광복군을 창설하는등 중국대륙에 기세를 드높인다.광복군 창립식에는 장개석총통을 비롯한 중국의 요인 수백명이 참석할 정도였다.종전을 앞두고 버마전선에 광복군이 투입되었으며 본토수복을 위한 OSS특공대원이 극비리에 양성되기까지 했다.
중경은 우리 임정의 마지막 정착지이자 항일투쟁의 최후거점이다.우리민족에게는 얼마나 큰 역사의 무게와 의미를 지니는 곳인가.무심히 버려둘수 없는 곳이다.이 중경임정청사가 한·중정부에 의해 공동으로 내년 광복절까지 복원된다고 한다.김일성 문민정부 출범이후 상해임시청사에 이은 두번째의 민족정기 복원공사이다.멀리 이역에서 임정의 역사가 살아숨쉬게 된다.
1994-04-0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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