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자기충전 여유… 만족도 85%/대낮 동네다니다 “수상쩍다” 검문받아
○새벽 본관앞 차밀려
상오 6시20분.출근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차들이 잘 빠질 것 같지만,서울 태평로의 삼성본관 앞에선 통근버스와 택시 그리고 자가용이 아현고개까지 밀리는 진풍경이 빚어진다.게다가 부인들이 피곤한 남편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는 현상까지 합세,조기 출근 신풍속도를 연출한다.
삼성그룹이 지난 해 7월12일 국내 최초로 7·4제 근무체제(상오 7시 출근,하오 4시 퇴근)를 도입,근무시간을 파격적으로 조정한 지 8개월이 지났다.다소간의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거의 정착되는 듯 하다.조기 출퇴근제 이후의 달라진 풍속도와 에피소드를 짚어본다.
○실업자로 오해도
○…「저 친구,직장 그만 뒀나」퇴근시간이 빨라지자 대다수 직원들은 한 때 엉뚱한 구설에 휘말렸다.퇴근 후 별다른 계획이 없어 벌건 대낮에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니 꼭 실업자로 보이기 때문이다.이 정도는 괜찮은 편이지만 경찰의 검문까지 받는다면 다소 심각하다.
삼성석유화학의 이모씨는 지난 해 집앞에서 경찰로부터 불심검문을 당했다.뭐하는 사람이길래 대낮에 넥타이까지 매고 왔다갔다 하느냐는 것.신분증을 보이고 사정을 설명해 「무혐의」를 입증했지만,이 사건은 이씨가 일과 후 계획을 수립하는 계기가 됐다.
상당수의 삼성맨들은 당초 퇴근 후의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한번 쯤 해보다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기 때문.따라서 계획은 고사하고 괜히 일찍 들어가면 마누라 「버릇」만 나빠진다고 판단,회사 근처에서 한 잔하는 경우가 더 늘기도 했었다.
아무리 마셔도 밤 8시가 넘지 않자 차수 변경은 계속됐고,술값과 이튿 날의 고통은 종전보다 더 커졌다.이런 사정은 지난 연말을 고비로 서서히 사라졌다.장난이 아니라고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어학학원 수강 늘어
요즘은 퇴근시간인 하오 4시 이후의 시간을 어학공부나 취미활동에 쓰는 직원이 늘어났다.삼성석유화학을 비롯한 상당수의 계열사는 직원들이 학원에 다닐 경우 학원비 전액을 지급하는 등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가정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삼성전관의 배과장은 부부가 맞벌이하는 탓에 「임무교대」 현상이 생겼다.자신은 4시에 퇴근하지만 부인은 7시가 돼야 집에 오기 때문.배과장은 퇴근 길에 슈퍼에서 장보고,놀이방에서 아이를 찾아온 뒤 쌀 씻어 밥을 안친다.그 후 부인이 오면 같이 식사한다.부인으로선 천국이 된 셈이다.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늦어도 아침 6시에는 집에서 나서야 하기에 밤 11시 이전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하지만 아이가 그 때까지 깨어있어 문제(?)가 생긴다.부모와 아이의 취침시간이 같으니 부부생활에 지장이 생기게 마련이다.요즘 배과장은 토요일마다 밖에서 아내와 신혼 기분을 낸다.
○간식줄어 식당 울상
○…아파트에 사는 직원들은 삼성 직원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레 이웃 사람들에게 알려졌다.태평로의 삼성타운(본관·생명·대경빌딩 등)근처의 라면집 매출은 급감했다.과거의 간식하던 시간이 퇴근시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본관 뒤에 있는 한 업소의 경우,전에는 하루 평균 1천 그릇 이상을 팔았으나 요즘은 5백∼6백 그릇 밖에 못 판다.인근 식당의 경우도 불문가지이다.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를 만나거나 각종 모임에 참가하는 방법도 나름대로 노하우를 개발했다.처음엔 당구장,목욕탕,만화방 등에서 시간을 보낸 뒤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그러자 금전 및 시간낭비가 많아 오히려 만남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그러나 지금은 약속을 금요일과 토요일로 몰아 버리거나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춘다.
○부작용 두고봐야
최근의 사내 여론조사 결과,직원들의 조기 출퇴근제 만족도는 85%에 달했다.「아파트에 주차하기 쉽다」「가족 모두가 일찍 일어난다」 등의 긍정적 효과에서 「퇴근 길 지하철 안의 샐러리맨 모두가 같은 배지를 달고 있더라」는 자부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들이다.
장기적으로 어떤 긍정적 효과와 또 부정적 영향이 나올지 관심거리이다.<김현철기자>
○새벽 본관앞 차밀려
상오 6시20분.출근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차들이 잘 빠질 것 같지만,서울 태평로의 삼성본관 앞에선 통근버스와 택시 그리고 자가용이 아현고개까지 밀리는 진풍경이 빚어진다.게다가 부인들이 피곤한 남편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는 현상까지 합세,조기 출근 신풍속도를 연출한다.
삼성그룹이 지난 해 7월12일 국내 최초로 7·4제 근무체제(상오 7시 출근,하오 4시 퇴근)를 도입,근무시간을 파격적으로 조정한 지 8개월이 지났다.다소간의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거의 정착되는 듯 하다.조기 출퇴근제 이후의 달라진 풍속도와 에피소드를 짚어본다.
○실업자로 오해도
○…「저 친구,직장 그만 뒀나」퇴근시간이 빨라지자 대다수 직원들은 한 때 엉뚱한 구설에 휘말렸다.퇴근 후 별다른 계획이 없어 벌건 대낮에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니 꼭 실업자로 보이기 때문이다.이 정도는 괜찮은 편이지만 경찰의 검문까지 받는다면 다소 심각하다.
삼성석유화학의 이모씨는 지난 해 집앞에서 경찰로부터 불심검문을 당했다.뭐하는 사람이길래 대낮에 넥타이까지 매고 왔다갔다 하느냐는 것.신분증을 보이고 사정을 설명해 「무혐의」를 입증했지만,이 사건은 이씨가 일과 후 계획을 수립하는 계기가 됐다.
상당수의 삼성맨들은 당초 퇴근 후의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한번 쯤 해보다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기 때문.따라서 계획은 고사하고 괜히 일찍 들어가면 마누라 「버릇」만 나빠진다고 판단,회사 근처에서 한 잔하는 경우가 더 늘기도 했었다.
아무리 마셔도 밤 8시가 넘지 않자 차수 변경은 계속됐고,술값과 이튿 날의 고통은 종전보다 더 커졌다.이런 사정은 지난 연말을 고비로 서서히 사라졌다.장난이 아니라고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어학학원 수강 늘어
요즘은 퇴근시간인 하오 4시 이후의 시간을 어학공부나 취미활동에 쓰는 직원이 늘어났다.삼성석유화학을 비롯한 상당수의 계열사는 직원들이 학원에 다닐 경우 학원비 전액을 지급하는 등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가정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삼성전관의 배과장은 부부가 맞벌이하는 탓에 「임무교대」 현상이 생겼다.자신은 4시에 퇴근하지만 부인은 7시가 돼야 집에 오기 때문.배과장은 퇴근 길에 슈퍼에서 장보고,놀이방에서 아이를 찾아온 뒤 쌀 씻어 밥을 안친다.그 후 부인이 오면 같이 식사한다.부인으로선 천국이 된 셈이다.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늦어도 아침 6시에는 집에서 나서야 하기에 밤 11시 이전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하지만 아이가 그 때까지 깨어있어 문제(?)가 생긴다.부모와 아이의 취침시간이 같으니 부부생활에 지장이 생기게 마련이다.요즘 배과장은 토요일마다 밖에서 아내와 신혼 기분을 낸다.
○간식줄어 식당 울상
○…아파트에 사는 직원들은 삼성 직원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레 이웃 사람들에게 알려졌다.태평로의 삼성타운(본관·생명·대경빌딩 등)근처의 라면집 매출은 급감했다.과거의 간식하던 시간이 퇴근시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본관 뒤에 있는 한 업소의 경우,전에는 하루 평균 1천 그릇 이상을 팔았으나 요즘은 5백∼6백 그릇 밖에 못 판다.인근 식당의 경우도 불문가지이다.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를 만나거나 각종 모임에 참가하는 방법도 나름대로 노하우를 개발했다.처음엔 당구장,목욕탕,만화방 등에서 시간을 보낸 뒤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그러자 금전 및 시간낭비가 많아 오히려 만남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그러나 지금은 약속을 금요일과 토요일로 몰아 버리거나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춘다.
○부작용 두고봐야
최근의 사내 여론조사 결과,직원들의 조기 출퇴근제 만족도는 85%에 달했다.「아파트에 주차하기 쉽다」「가족 모두가 일찍 일어난다」 등의 긍정적 효과에서 「퇴근 길 지하철 안의 샐러리맨 모두가 같은 배지를 달고 있더라」는 자부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들이다.
장기적으로 어떤 긍정적 효과와 또 부정적 영향이 나올지 관심거리이다.<김현철기자>
1994-03-28 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