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사실은 신이라고 해야 하겠지만)의 탄생과정을 아주 신화적이거나 신비로운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또는 신비성을 강조하는 대신에 일반 대중들이 꿈으로 간직하고 있으며 늘 동경하는 부유하고 축복된 왕가의 가문에서 태어난 사실을 드러내기도 한다.체계화된 고등종교에서 만이 아니라 샤머니즘과 같은 종교에서도 신비성은 신의 체험을 말할 때 으레 그 중심이 된다.
그런데 기독교의 예수탄생 이야기는 다른 종교의 신의 탄생설화와는 상당히 다르다.물론 예수의 가문에 관하여 일찍이 이스라엘을 가장 굳건한 나라로 만들었던 다윗왕가의 출신이라고 길게 그 족보를 설명하는 부분도 있다.그리고 성경은 예수가 어머니인 마리아와 아버지인 요셉의 관계를 통하여 잉태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하여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났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이러한 신비적 요소 뒤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그 중심이 역사의 한 가운데 그 현장에서 시작되고 있다.어둠과 억압의 역사,좌절과 슬픔의 상황,그리고 민족의 영광스럽던 역사는 사라지고 이방인의 식민통치 아래 무릎을 꿇고 살아가야 하는 그 현실의 묘사가 예수의 탄생 자체보다 훨씬 더 뚜렷하다.그래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흔하게 나타나는 별을 따라 먼길 가는 동방의 박사들이라던가,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들여다 보는 마리아와 그 주변에 둘러선 말이나 염소 따위의 동물들의 그림에서 그 상황을 엿볼 수도 있다.햇빛도,달빛도 아닌 희미한 별빛에서 새로운 빛의 역사를 내다보는 지혜는 어쩌면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는지 모른다.그리고 인간의 사회 저 밑바닥,가장 낮은 곳에서 진리와 사랑과 평화가 움터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간절한 소망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금년 성탄절은 쌀수입 개방,정부의 일대 개각 등에 휘말려 더욱 불안한 느낌이다.그러나 성탄절이 이 불안을 녹여내는 절기가 되려면 진실로 정직한 정치가 이루어지고 바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과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예수탄생 이야기는 다른 종교의 신의 탄생설화와는 상당히 다르다.물론 예수의 가문에 관하여 일찍이 이스라엘을 가장 굳건한 나라로 만들었던 다윗왕가의 출신이라고 길게 그 족보를 설명하는 부분도 있다.그리고 성경은 예수가 어머니인 마리아와 아버지인 요셉의 관계를 통하여 잉태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하여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났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이러한 신비적 요소 뒤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그 중심이 역사의 한 가운데 그 현장에서 시작되고 있다.어둠과 억압의 역사,좌절과 슬픔의 상황,그리고 민족의 영광스럽던 역사는 사라지고 이방인의 식민통치 아래 무릎을 꿇고 살아가야 하는 그 현실의 묘사가 예수의 탄생 자체보다 훨씬 더 뚜렷하다.그래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흔하게 나타나는 별을 따라 먼길 가는 동방의 박사들이라던가,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들여다 보는 마리아와 그 주변에 둘러선 말이나 염소 따위의 동물들의 그림에서 그 상황을 엿볼 수도 있다.햇빛도,달빛도 아닌 희미한 별빛에서 새로운 빛의 역사를 내다보는 지혜는 어쩌면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는지 모른다.그리고 인간의 사회 저 밑바닥,가장 낮은 곳에서 진리와 사랑과 평화가 움터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간절한 소망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금년 성탄절은 쌀수입 개방,정부의 일대 개각 등에 휘말려 더욱 불안한 느낌이다.그러나 성탄절이 이 불안을 녹여내는 절기가 되려면 진실로 정직한 정치가 이루어지고 바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과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1993-12-2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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