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22%가 총기를 지녔다니(박갑천칼럼)

고교생 22%가 총기를 지녔다니(박갑천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3-12-18 00:00
수정 1993-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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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숙권의 「패관잡기」에 쓸모 없고 격에 맞지않은 일을 든 대목이 있다.봄비가 자주 오는것,돌담이 배가 부른것,사발이 귀가 떨어진것,노인이 떠도는것,아이가 입이 빠른것,중이 술에 취한것,진흙부처가 내를 건너는것….이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에 대한 당시의 우리 속담도 소개하고 있다.초헌에 말채찍,짚신에 징,거적문에 쇠돌쩌귀,사모에 영자,삿갓에 털이개,중의 재에 춤….

그렇다.외바퀴이기는 해도 수레는 수레인 것이 초헌인데 거기 말채찍을 친다 해서 빨라질리가 없다.징은 구두에 박고 쇠돌쩌귀는 나무문에 다는 것이 아니던가.도포입고 수렁 뒤지는 일 만큼이나 걸맞잖은 일들을 대조시켜 놓고 있는데서 묘미가 느껴진다.

눈을 돌리자.그렇다면 『수업받는 고등학생 허리춤에 총기』는 어떤가.어울리는 광경일까.배우는 학생이 교실로 총을 차고 들어간다는건 갓끈 다는데 붙는 영자를 비단예모인 사모에 다는 것보다 몇십배 왜나간 모습이다.그건 차라리 살풍경이다.그곳을 어찌 교실이라 하겠는가.

한데 지구상에는 그런 곳이 있다.미국도시의남자 고등학생중 22%가 총기를 지니고 있으며 이들중 12%는 「항시휴대」한다는 것이 아니던가.의아스럽지만 그나라 법무부가 발표한 일이니 믿어둬야 할 일이다.『총은 쏘라고 준것』이라는 어떤 나라 높은 양반 명언(?)을 떠올리자니 참으로 섬뜩해진다.어느날 무슨 빌미로 어떤 고등학교가 서부활극의 무대로 될지 누가 알랴.

『무기란 상서롭지 못한 기구』(병자불상지기)라는 말이 「노자」(노자:31장)에 보인다.자연은 그래서 이걸 미워하며 도를 깨달은 사람은 이를 쓰지 않는다고 잇고 있다.이 말은 「삼략」(삼략:황석공이 장양에게 전해 주었다는 태공망의 병서)에도 똑같이 나온다.천하의 정도를 논한 경세서라고 함이 옳을 「삼략」은 그러나 『성인은 때로 만부득이하여 이를 쓰는 수가 있다』고 덧붙인다.「하늘의 뜻을 펼칠때」가 바로 그것이다.

잘살면 뭘하는가.아니,무엇을 가리키면서 잘 산다고들 하는 것인가.잘 먹고 잘 입고 잘 놀수 있는걸 두고 이르는 것인가.그때문에 인류는 지금 「영혼의 동물」임을 잊고 「경제동물」을 추구해 간다는것인가.하지만 제아무리 풍요를 구가한다 해도 교실 의자에 앉아있는 고등학생 허리춤에 총이 채워져 있다면 그 사회는 암담하다.칼도 「병자」인데 하물며 총에 있어서이겠는가.총은 또 다른 총을 불러들이는 법이다.인류의 심성은 지금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1993-12-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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