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무 서안초대 이유/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한 외무 서안초대 이유/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양승현 기자 기자
입력 1993-11-02 00:00
수정 1993-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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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알 수 없는 벌판위에 잘 정리된 밭,그 사이로 패어있는 깊은 협곡,군데군데 마을들,말이 끄는 마차,마을의 무수한 감나무….모든 것들이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옅은 황사에 뿌옇게 뒤덮여 있었다.가장 중국적인 정취의 고도 서안.버스 차창을 스치는 마을의 풍광은 우리것과 흡사했다.끝없는 옥수수밭만이 대륙의 풍모를 과시하고 있었다.「아,황사현상이 이래서 생기는구나」.서툴게 포장된 신작로 주변엔 하늘에선 숲으로 보이던 조그마한 정사각형의 「산」들이 스쳐 지나갔다.당조의 13개 황릉.『진시황릉과 같이 아직 발굴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유물의 보존방법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외교부 신문국 직원의 설명이었다.1974년 농부가 우물을 파다 발견했다는 진시황릉의 병마용은 서안 시내에서 2시간 가량 더 가야했다.능은 가로 4㎞×세로 4㎞의 어마어마한 크기였다.병마용은 그 일부.고색의 담장에 둘러싸인 역사 기록상에 나타난 외형상의 황릉 1㎞ 앞에 자리했다.그래서 1천5백여년이 훨씬 지난뒤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동작과모습이 모두 다른 3천여개의 병마용은 황하문명의 진수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13살의 진시황이 무려 39년 동안 78만명의 인원을 동원해 지은 대역사.당시 진시황의 친위부대를 그대로 본따 만들었다는데 젊은 병사,수염 난 늙은 병사….각양이었다.모자를 쓴 사람은 지휘관이고 진시황이 타던 청동마차를 끄는 사람은 장군이다.손 모양이 모두 다른데 안내원의 설명은 창 칼 활을 든 모습이라고 한다.무기는 나무로 만든듯 발굴때부터 없었다고 했다.진시황이 나들이 때 타던 청동마차는 무기가 뚫지못하고 온도 습도를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 밖을 훤히 내다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는 움직이는 별궁이었다.토용은 원래 색이 있었으나 보존방법을 몰라 밖으로 나오자 색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아직도 땅속엔 5천여개의 병마용이 더 묻혀있다.그러나 발굴은 먼 뒷날의 일이라고 주위에서 누가 거든다.버스로 30분정도 시내쪽으로 달리니 당현종과 양귀비가 놀던 온천휴양지 화청지가 나왔다.귀비가 혼자서 목욕을 즐겼다는 돌 목욕탕과 아름다운 정원,연못,화려한 누각,양귀비의 춤추는 벽화….귀비를 빼앗긴 안록산의 반란이 이해되고도 남았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서안의 길가 주점들이 하나 둘 붉은 등을 밝히기 시작했다.보름달이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고 있었다.중국이 왜 휴일에 맞춰 한승주외무장관을 문화유적의 보고,서안에 초대했을까.지금 우리 하늘에도 떠있을 「똑같은」 보름달을 보게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1993-11-0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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