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약의 목표 설정하는 자리로
대전에 사는 나에겐 93대전엑스포는 파헤쳐진 길들과 뿌리를 드러내고 시드는 가로수들,때를 가리지 않는 교통체증,흙을 한껏 싣고 마구 달리는 트럭들 따위 짜증나는 일들로 먼저 다가왔다.개장까지 남은 날들을 알리는 전광판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짜증은 「이렇게 벌여놓은 공사들이 그대까지?」라는 걱정에 밀려났다.
대중매체들은 준비가 예정대로 되어간다고 보도했지만 어수선한 행사장을 지날 때마다 걱정은 되살아났다.그래서 개장을 한주일 앞두고 행사장을 찾았을 때 나는 먼저 마무리작업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때에 끝낼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늘 거의없어 문제
잘 되어간다는 대답을 듣고 한결 느긋해진 마음으로 둘러본 행사장의 첫인상은 좀 실망스러웠다.공사가 덜 끝나서 어수선하다는 사정도 있었을 것이고 텔레비전의 화면을 통해 본 세상은 현실보다 훨씬 깔끔하고 환상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기대가 컸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실제로 부족한 점들도 적지 않았다.전시관들은 대체로 겉모습이 속에 든 것들보다 나았다.전시관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듯했다.
관객들의 처지에서 살피면서 시설을 마련하려고 애쓴 자취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그늘이 거의 없다는 것이 당장 큰 문제였다.단체관람을 와서 팔월의 뙤약볕 아래 여러 시간을 보낼 학생들을 생각하면 끔찍했다).무엇보다도 마음 한구석에 늘 얹혀 있던 걱정 하나가 현실로 나타났으니 국제박람회여서 행사장의 중심인데도 국제관은 초라했다.앞선 사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음이 이내 눈에 띄어서 특히 서운했다.
그러나 부족한 점들을 꼽으면서도 나는 알고 있었다.그것들이 준비할 시간이 워낙 짧았다는 사정에서 나왔음을,그래서 기일을 맞춘 것 자체가 큰 성취임을.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맞는 행사는 얼마나 품이 많이 들고 어려운가.
○어린이프로 많아
그 사이에도 국민학교 4학년인 딸아이는 연방 탄성을 내면서 처음 보는 프로그램들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녀석이 눈썰미가 있어서 나는 어떻게 하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프로그램들과 기구들을 제법 구슬리는 것을 보고선 기분이 문득 좋아졌다.그러고보니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아이들을 위해서 만든 것들도 많았다.엑스포의 주제가 미래의 모습이므로 미래의 무대에서 활동할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많다는 것은 무척 흐뭇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그런 단편적 프로그램들에 나온 모습들을 한데 모으면 저절로 모습을 갖추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우리는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을 때 비로소 구체적 모습을 갖춘다.
시민들의 눈길이 미래를 향한 자리이므로 엑스포는 그런 물음을 던지기 좋은 곳이다.바로 그것이 1893년에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재발견 4백주년을 기려 시카고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미국 역사가 헨리 애덤스가 생각한 것이다.이제는 고전이 된 자서전 「헨리 애덤스의 교육」에서 그는 『시카고는 1893년에 처음으로 미국 사람들, 그들이 어디로 달려가는지 아느냐는 물음을 던졌다』라고 썼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그런 물음을 던질 수 있었던 기회는 88서울올림픽이었다.시민들의 희망과 도덕심이 한껏 고양되었던 그때 우리가 그런 물음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음은 어느 모로 보나 성공적이었던 그 행사가 우리 사회에 별다른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프게 일깨워준다.
○서울평화상이 상징
돌아다보면 우리는 그때 열린 사회를 지향해야 했음이 또렷이 드러난다.그러나 우리는 그런 목표를 찾지 못했고 시민들의 한껏 고양된 도덕적 에너지는 스러졌다.시민들의 동의 없이 정부가 급작스레 만들어서 뚜렷한 성격조차 찾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끝내 사라지게 된 서울평화상이 그 사실을 상징한다.
이제 우리에겐 그런 물음을 던질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국제화와 정보화가 중요한 경향인 현대에서 여러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배우고 즐기는 국제박람회보다 그런 일에 더 나은 자리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지난 봄에 도덕적 권위를 가진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의 지속적 발전에 필요한 조건들 가운데 이전엔 채워지지 못한 중요한 조건 하나가 채워졌다.이처럼 좋은 기회를 맞아 우리가 그런 물음을 던지지 못한다면,아마도 이번 엑스포도 서울 올림픽처럼 우리 사회에 별다른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아주 짧은 기간에 마련해서 천만명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즐길 자리를 내놓는 것은 대단한 성취다.그러나 이번 엑스포가 그런 성취만으로 끝나고,우리가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말로 아까운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변거일 소설가>
대전에 사는 나에겐 93대전엑스포는 파헤쳐진 길들과 뿌리를 드러내고 시드는 가로수들,때를 가리지 않는 교통체증,흙을 한껏 싣고 마구 달리는 트럭들 따위 짜증나는 일들로 먼저 다가왔다.개장까지 남은 날들을 알리는 전광판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짜증은 「이렇게 벌여놓은 공사들이 그대까지?」라는 걱정에 밀려났다.
대중매체들은 준비가 예정대로 되어간다고 보도했지만 어수선한 행사장을 지날 때마다 걱정은 되살아났다.그래서 개장을 한주일 앞두고 행사장을 찾았을 때 나는 먼저 마무리작업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때에 끝낼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늘 거의없어 문제
잘 되어간다는 대답을 듣고 한결 느긋해진 마음으로 둘러본 행사장의 첫인상은 좀 실망스러웠다.공사가 덜 끝나서 어수선하다는 사정도 있었을 것이고 텔레비전의 화면을 통해 본 세상은 현실보다 훨씬 깔끔하고 환상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기대가 컸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실제로 부족한 점들도 적지 않았다.전시관들은 대체로 겉모습이 속에 든 것들보다 나았다.전시관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듯했다.
관객들의 처지에서 살피면서 시설을 마련하려고 애쓴 자취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그늘이 거의 없다는 것이 당장 큰 문제였다.단체관람을 와서 팔월의 뙤약볕 아래 여러 시간을 보낼 학생들을 생각하면 끔찍했다).무엇보다도 마음 한구석에 늘 얹혀 있던 걱정 하나가 현실로 나타났으니 국제박람회여서 행사장의 중심인데도 국제관은 초라했다.앞선 사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음이 이내 눈에 띄어서 특히 서운했다.
그러나 부족한 점들을 꼽으면서도 나는 알고 있었다.그것들이 준비할 시간이 워낙 짧았다는 사정에서 나왔음을,그래서 기일을 맞춘 것 자체가 큰 성취임을.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맞는 행사는 얼마나 품이 많이 들고 어려운가.
○어린이프로 많아
그 사이에도 국민학교 4학년인 딸아이는 연방 탄성을 내면서 처음 보는 프로그램들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녀석이 눈썰미가 있어서 나는 어떻게 하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프로그램들과 기구들을 제법 구슬리는 것을 보고선 기분이 문득 좋아졌다.그러고보니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아이들을 위해서 만든 것들도 많았다.엑스포의 주제가 미래의 모습이므로 미래의 무대에서 활동할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많다는 것은 무척 흐뭇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그런 단편적 프로그램들에 나온 모습들을 한데 모으면 저절로 모습을 갖추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우리는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을 때 비로소 구체적 모습을 갖춘다.
시민들의 눈길이 미래를 향한 자리이므로 엑스포는 그런 물음을 던지기 좋은 곳이다.바로 그것이 1893년에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재발견 4백주년을 기려 시카고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미국 역사가 헨리 애덤스가 생각한 것이다.이제는 고전이 된 자서전 「헨리 애덤스의 교육」에서 그는 『시카고는 1893년에 처음으로 미국 사람들, 그들이 어디로 달려가는지 아느냐는 물음을 던졌다』라고 썼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그런 물음을 던질 수 있었던 기회는 88서울올림픽이었다.시민들의 희망과 도덕심이 한껏 고양되었던 그때 우리가 그런 물음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음은 어느 모로 보나 성공적이었던 그 행사가 우리 사회에 별다른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프게 일깨워준다.
○서울평화상이 상징
돌아다보면 우리는 그때 열린 사회를 지향해야 했음이 또렷이 드러난다.그러나 우리는 그런 목표를 찾지 못했고 시민들의 한껏 고양된 도덕적 에너지는 스러졌다.시민들의 동의 없이 정부가 급작스레 만들어서 뚜렷한 성격조차 찾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끝내 사라지게 된 서울평화상이 그 사실을 상징한다.
이제 우리에겐 그런 물음을 던질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국제화와 정보화가 중요한 경향인 현대에서 여러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배우고 즐기는 국제박람회보다 그런 일에 더 나은 자리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지난 봄에 도덕적 권위를 가진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의 지속적 발전에 필요한 조건들 가운데 이전엔 채워지지 못한 중요한 조건 하나가 채워졌다.이처럼 좋은 기회를 맞아 우리가 그런 물음을 던지지 못한다면,아마도 이번 엑스포도 서울 올림픽처럼 우리 사회에 별다른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아주 짧은 기간에 마련해서 천만명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즐길 자리를 내놓는 것은 대단한 성취다.그러나 이번 엑스포가 그런 성취만으로 끝나고,우리가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말로 아까운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변거일 소설가>
1993-08-0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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