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우 경전 저술,동학사상 완성된 곳
천도교 교조 최제우대신사가 1961년1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은거하며 교리의 기본이 되는 포덕문 논학문(동학론)교훈가 몽중노소문답가 도수사등 6편의 경전을 저술한 남원시 산곡동 교용산성 선국사내에 있는 암자.천도교 제2의 성지로 「동학사상」이 완성된 곳이다.
대신사는 득도 1년후인 38세(1861년)때 6월부터 거처인 경주 용담정에서 도를 설파,포교를 시작했다.그러나 점차 많은 사람들이 도를 찾아 모임에 따라 유생들의 비난이 거세지고 관의 탄압이 심해지자 대신 사가 포교 5개월만에 부득이 고향을 떠나 종자 최중의만 데리고 멀리 호남으로 피신했던 곳이다.
대신사는 이곳에서 첫집필한 동학론에서 『나는 무극대도는 서학이 아니다』라고 논증했다.또 『그리스도를 서학이라 한다면 나의 가르침은 천도이며 학으로 말하면 동학이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이때부터 대신사의 가르임을 일반인들이 동학이라 일컫게 됐다는 것.은적암은 갑오혁명때 관병의 방화로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표석과 안내판만 남아 옛자취를 더듬게 하고 있다.천도교측은 은적암을 복원하고 부근을 성역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도>
천도교 교조 최제우대신사가 1961년1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은거하며 교리의 기본이 되는 포덕문 논학문(동학론)교훈가 몽중노소문답가 도수사등 6편의 경전을 저술한 남원시 산곡동 교용산성 선국사내에 있는 암자.천도교 제2의 성지로 「동학사상」이 완성된 곳이다.
대신사는 득도 1년후인 38세(1861년)때 6월부터 거처인 경주 용담정에서 도를 설파,포교를 시작했다.그러나 점차 많은 사람들이 도를 찾아 모임에 따라 유생들의 비난이 거세지고 관의 탄압이 심해지자 대신 사가 포교 5개월만에 부득이 고향을 떠나 종자 최중의만 데리고 멀리 호남으로 피신했던 곳이다.
대신사는 이곳에서 첫집필한 동학론에서 『나는 무극대도는 서학이 아니다』라고 논증했다.또 『그리스도를 서학이라 한다면 나의 가르침은 천도이며 학으로 말하면 동학이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이때부터 대신사의 가르임을 일반인들이 동학이라 일컫게 됐다는 것.은적암은 갑오혁명때 관병의 방화로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표석과 안내판만 남아 옛자취를 더듬게 하고 있다.천도교측은 은적암을 복원하고 부근을 성역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도>
1993-06-1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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