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함태탄광/39년 애환 남긴고 문닫아

강원 함태탄광/39년 애환 남긴고 문닫아

정호성 기자 기자
입력 1993-05-28 00:00
수정 199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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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무연탄 3천만t 매장… 광원 몰려/80년대 중반 연탄소비 줄면서 사양길/첫 시위기록… 노조위원장 의원배출도

국내 굴지의 민영탄광인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함태탄광이 오는 31일 문을 닫는다.

이로써 지난 39년동안 석탄산업의 흥망성쇠를 한몸에 지녔던 함태탄광은 숱한 애환을 남긴채 탄광촌 주민들의 가슴 속으로 묻히게 됐다.

함태탄광은 지난 52년 8월 광권 출원 등록을 한 뒤 54년 5월 개광과 함께 첫 탄맥을 캤다.강원탄광에 이은 두번째 민영탄광이었다.

탄광의 대부분이 밖으로 드러나 캐기가 쉬운데다 저장량이 3천6백32만t으로 추정돼 탄광의 여건은 여타 광업소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무연탄의 질 또한 다른 광업소가 평균 5천㎉를 크게 넘지 못하는 것에 비해 특급인 6천㎉를 훨씬 넘어 판매시장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이어 55년 강릉∼영주간의 영동선이 개설되면서 생산량이 크게 늘었고 81년 9월에는 수갱시설을 완료,한때 연간 최고 70여만t의 무연탄을 생산하는 등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함태탄광의 운명은 기울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에너지 소비성향이 고급화되면서 연탄 소비가 줄고 원탄 판매가 둔화되자 기세등등하던 함태탄광도 어쩔수 없이 운영난에 부딪힌 것이다.

광원들마저 하나둘씩 탄광을 떠났다.지난 88년부터 92년까지 5년동안 2백32억6천만원의 퇴직금을 주다보니 부채가 3백66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결국 회사측은 탄광을 닫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함태탄광은 지난 5월까지 1천8백42만7천2백37t의 무연탄을 생산,앞으로 캘수 있는 1천4백여만t은 태백산맥의 준령에 기약없이 묻혀있게 됐다.

39년의 채탄역사는 수많은 애환과 추억을 남겨놓았다.

1백여㎞의 갱도를 뚫는 동안 3천9백2건의 재해가 나 4천3백4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애처롭게도 1백40명은 검은 탄맥 속에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가장 큰 사고는 지난 82년 1월3일 함백갱도에서 일어난 가스사고와 86년6월 같은 갱도에서의 가스폭발사고였다.9명과 4명이 각각 숨졌다.

우리나라 탄광사상 최초의 데모가 74년 1월 발생한 것과 탄광노조위원장 출신인 유승승씨가 13·14대 국회의원(민자당)이 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개광때 입사,청춘을 이 곳에 바친 광원직번 1번 이상인씨(62)는 『막상 광업소가 문을 닫게 된다니 39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면서 『또 얼마나 많은 태백시민들이 탄광촌을 떠날지 모르지만 이번 폐광을 계기로 태백이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춘천=정호성기자>
1993-05-2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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