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총리와 운동권의 통일토론/구본영 북한부기자(오늘의 눈)

부총리와 운동권의 통일토론/구본영 북한부기자(오늘의 눈)

구본영 기자 기자
입력 1993-05-26 00:00
수정 199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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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4층에서는 이색적인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전대협 후신인 한총련 소속의 핵심운동권 대학생 6명과 새정부의 개혁실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한완상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만나 통일정책에 관한 대화를 가진 것이다.

굳이 「변화와 개혁」시대를 상징한다는 식으로 의미부여를 하지 않더라도 지난 시대에는 보기 어려웠던 광경이었다.어쩌면 돌멩이와 최루탄이 난무했던 시대에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날 재야출신의 전직교수인 정부 「당국자」와 비당국자인 운동권학생들간의 색다른 만남은 부총리집무실에서 간단한 인사만 나눈후 곧 청사옆 설렁탕집으로 옮겨 통일문제에 대한 격의없는 토론으로 이어졌다.

이날 대화에서는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만 이뤄지면 당국과 비당국을 갈라놓으려는 북한의 구태의연한 통일전선전술을 봉쇄할 수 있다』는 한부총리의 기대와는 달리 상당한 시각차가 있었다는 후문이다.국가보안법 개폐와 이른바 남북대화 창구의 단일화 문제 등에 대한 이견이 그것이다.그러나 이같은 의견의 평행선은 감정의 평행선으로 치닫지 않은한 언젠가는 좁혀질 수도 있기에 이날 모임은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한 과정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이날 모임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통독직전 방한했던 브란트전서독총리의 말을 생각해냈다.당시 그는 언제 독일통일이 이뤄질 것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운명의 여신이 미소짓는다면 5년내에…그렇지 않으면 우리 생애에 어려울지도 모른다』

지속적인 「동방정책」을 펴 「독일 통일의 화신」으로 불렸던 브란트에게 기대했던 것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신중한 답변이었다.하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그로부터 불과 5개월후 들이닥친 통일과업을 독일 국민들이 큰 혼란없이 이겨냈다는 사실이다.그것은 언제 통일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평소에 통일방안과 통일 이후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져 있었기에 가능했다.

예기치 않게 다가올 통일을 앞두고 통일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절실한 우리에게 한부총리와 운동권학생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로 보였다.
1993-05-2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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