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잡는 까닭은(외언내언)

총잡는 까닭은(외언내언)

입력 1993-04-10 00:00
수정 199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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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란 상서롭지 못한 기구이다』(병자불상지기)라는 말이 있다.「노자」(31장)에 나온다.여기서의 「병」이란 무기 일반을 가리킨다.이 글은 다시 『그러므로 도를 깨달은 사람은 이를 쓰지 않는다』고 잇고 있다.이 31장에 대해서는 노자의 말이 아니라 병가의 말이 끼어든 것이라는 추측도 있어온다.병서인 「삼략」(하략편)에도 보이는 말이다.

무기는 무기를 부른다.지구촌의 냉전시대 동서 양진영이 에스컬레이트 현상으로 무기경쟁을 벌였던 것도 그것이다.저쪽에 무기가 있으면 이쪽에도 있어야 한다.저쪽보다 더 성능 좋은 것이 있어야 한다.물론 저쪽이라 해서 이쪽의 그런 움직임에 수수방관하는 것은 아니다.이쪽보다 더 나은걸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옛사람들이 상서롭지 못하다고 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그것은 끝없는 대립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의 우리 동포들이 로드니 킹 사건과 관련한 연방민권재판의 평결을 앞두고 폭동재발에 대비하여 총을 사재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여간만 불안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지난해의 폭동때 총이 있었던 경우는 방어해낸데 비해 총이 없었던 경우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경험에 바탕한 자위조치들이라고 한다.하지만 총이 있을 때의 인명피해와 없을 때의 그것이 같을 수는 없다.이쪽의 대비에 저쪽의 움직임 또한 달라질 것은 자명해지지 않은가.우려되는 것은 그 대목이다.정말로 『무기란 상서롭지 못한 기구』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세계제일의 부강국에서 경찰을 불신하여 국민들 각자가 자위수단을 강구하고 나섰다는 점이 괴이쩍어지면서 당혹하게 하기도 한다.나라 체면은 무엇이 되는지.불행한 일이다.과연 잘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또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해보게 한다.역이민 현상이 두드러져 가는 까닭도 알만해진다.

1993-04-1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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