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허 현진건(빙하 현진건)의 단편 가운데 「운수 좋은 날」이 있다.우리 단편소설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평가되는 1920년대 작품이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듯하더니 눈은 아니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는 허두로 보아 요맘때의 이상기후였던 것인지 모른다.『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동안 돈구경도 못한』인력거꾼 김첨지는 이날 생각지도 못한 큰돈을 번다.첫번째에 삼십전,두번째에 오십전,세번째에는 놀랍게도 일원오십전 하는 식으로.그는 선술집에 들러 몇잔 걸친 다음 병석의 아내가 먹고 싶어하던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으로 간다.그렇게나 운수 좋은 날에 아내는 죽어있었다.
그렇다면 운수 좋은 날은 바로 운수 사나운 날이 아니었던가.빙허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이같은 인생살이의 기묘한 엇결이었다.생각해 보자면 운수 좋은 일이 바로 운수 사나운 일이기도 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 기미를 모르는지라 나타난 현상만을 놓고 일희일비한다는 뜻.그러기에 옛사람도 경계하지 않았던가.『꽃은 반만 핀것을 보고 술은 조금취토록 마시면 이 가운데 가취(개취)가 있다.만약 꽃이 활짝 피고 술이 흠씬 취함에 이르면 문득 악경을 이루나니 「가득찬 곳에 있는 이」(이영만자)는 마땅히 생각할지니라』고.(홍자성의 「채근담」)
여느해보다 일찍 들어서 올해는 21일이 동지였다.팥죽 쑤어 먹고 이를 뿌려 잡귀 쫓는 풍속이었지만 한편 이날을 「일양래복」(일양래복:양이 다시 옴)이라 일컬었던 점에 깊은 뜻이 담긴다.춥기 시작하는 무렵에 동지는 들었고 사실은 동지가 지난 다음인 이듬해의 1월 중순쯤이라야 그 겨울의 진짜 추위는 닥치는게 아니던가.그런데 진짜 추위가 시작되기도 전인 동지에 양이 싹튼다고 했으니 음은 그 때부터 기세가 꺾여 간다는 뜻이다.
도산서원에서도 이런 논의가 있었던 듯하다.어느 동짓날 김취려가 스승 퇴계에게 묻는다.『오늘은 일양이 처음으로 움직이는 날로써 곧 천지가 물을 생하는 처음이니 모든 초목 뿌리의 생기가 움직이는 것입니까』하고.이에 스승은 『…그 가지는 마르고 여위어 생기가 나타나지 않으나 그 싹이 터서 자랄수 있는 이치는오늘에 이미 움직이는 것이다』고 대답한다.그러면서 『…그뿐 아니라 선의 싹이 맹동함도 양이 돌아오는 날이니라.다만 사람들이 욕심때문에 그 기운을 넓히고 채우는 공을 이루지 못하니…슬픈 일이다』고 덧붙인다.
세상의 길흉화복이 이것이다.운수있는 날의 길속에 흉이 깃들이고 한겨울 동지의 음속에서 양은 꿈틀댄다.그러므로 한때의 길에 너무 가즈럽게 굴 일도 아니고 한때의 음에 너무 직수굿해 있을 일 또한 아니다.어떻게 겸허하고 어떻게 극복해내느냐 하는 슬기가 중요할 뿐이다.<서울신문 논설위원>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듯하더니 눈은 아니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는 허두로 보아 요맘때의 이상기후였던 것인지 모른다.『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동안 돈구경도 못한』인력거꾼 김첨지는 이날 생각지도 못한 큰돈을 번다.첫번째에 삼십전,두번째에 오십전,세번째에는 놀랍게도 일원오십전 하는 식으로.그는 선술집에 들러 몇잔 걸친 다음 병석의 아내가 먹고 싶어하던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으로 간다.그렇게나 운수 좋은 날에 아내는 죽어있었다.
그렇다면 운수 좋은 날은 바로 운수 사나운 날이 아니었던가.빙허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이같은 인생살이의 기묘한 엇결이었다.생각해 보자면 운수 좋은 일이 바로 운수 사나운 일이기도 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 기미를 모르는지라 나타난 현상만을 놓고 일희일비한다는 뜻.그러기에 옛사람도 경계하지 않았던가.『꽃은 반만 핀것을 보고 술은 조금취토록 마시면 이 가운데 가취(개취)가 있다.만약 꽃이 활짝 피고 술이 흠씬 취함에 이르면 문득 악경을 이루나니 「가득찬 곳에 있는 이」(이영만자)는 마땅히 생각할지니라』고.(홍자성의 「채근담」)
여느해보다 일찍 들어서 올해는 21일이 동지였다.팥죽 쑤어 먹고 이를 뿌려 잡귀 쫓는 풍속이었지만 한편 이날을 「일양래복」(일양래복:양이 다시 옴)이라 일컬었던 점에 깊은 뜻이 담긴다.춥기 시작하는 무렵에 동지는 들었고 사실은 동지가 지난 다음인 이듬해의 1월 중순쯤이라야 그 겨울의 진짜 추위는 닥치는게 아니던가.그런데 진짜 추위가 시작되기도 전인 동지에 양이 싹튼다고 했으니 음은 그 때부터 기세가 꺾여 간다는 뜻이다.
도산서원에서도 이런 논의가 있었던 듯하다.어느 동짓날 김취려가 스승 퇴계에게 묻는다.『오늘은 일양이 처음으로 움직이는 날로써 곧 천지가 물을 생하는 처음이니 모든 초목 뿌리의 생기가 움직이는 것입니까』하고.이에 스승은 『…그 가지는 마르고 여위어 생기가 나타나지 않으나 그 싹이 터서 자랄수 있는 이치는오늘에 이미 움직이는 것이다』고 대답한다.그러면서 『…그뿐 아니라 선의 싹이 맹동함도 양이 돌아오는 날이니라.다만 사람들이 욕심때문에 그 기운을 넓히고 채우는 공을 이루지 못하니…슬픈 일이다』고 덧붙인다.
세상의 길흉화복이 이것이다.운수있는 날의 길속에 흉이 깃들이고 한겨울 동지의 음속에서 양은 꿈틀댄다.그러므로 한때의 길에 너무 가즈럽게 굴 일도 아니고 한때의 음에 너무 직수굿해 있을 일 또한 아니다.어떻게 겸허하고 어떻게 극복해내느냐 하는 슬기가 중요할 뿐이다.<서울신문 논설위원>
1992-12-2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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