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네곁에/고상순 춘천 삼천국교 교사(교창)

내사랑 네곁에/고상순 춘천 삼천국교 교사(교창)

입력 1992-12-17 00:00
수정 1992-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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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판국교 통곡분교장 근무를 명함」

발령장에 적힌,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임지를 찾아 떠나던 그날은 유난히도 많은 봄비가 종일 내렸다.

전임교를 출발할 때부터 쏟아진 비는 내가 근무하게 될 분교장을 찾아 고갯마루에 올라섰을 때는,한여름 소나기가 무색하리만큼 굵은 장마비로 변해 있었다.

웬지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울며 찾아갔다가 울며 돌아서는 곳이라더니,정말이지 울고만 싶었다.

『정들면 고향이라지 않더이까』

『가서 정을 붙이면 곧 익숙해지실텐데 뭘』

송별연에서 교장선생님의 격려반,위로반 섞인 말씀처럼 쉽게 정을 쏟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 좋다.한번 부딪혀 보리라.온힘을 다해 나를 이곳으로 보낸 이들을 한번쯤 놀라게 해주리라」

하오 내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과연 무엇을,어디서부터,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종잡을 수 없을만큼 열악한 환경에 몇번인가 놀란 끝에 난 몇가지의 계획을 세웠고,내가 아는 모든 분들께 장문의 호소문을 띄웠다.

문협·출판협·라이온스클럽·삼성컴퓨터·한국자동차 그리고 한국교육상수상자회를 비롯하여 친분이 닿는 2백여곳의 친지 동료 선배님들께.

그로부터 한달.

난 전국에서 보내주는 도서를 10년이 넘은 승용차로 실어날랐다.때로는 장마비로 도로가 유실되어 차가 물에 빠지는 일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3천여권의 도서가 마련됐다.

다음으로 손을 댄 것이 농악이었다.

여러곳에서 악기를 기증받고,강원대 두레패 언니들의 도움으로 기능을 익혀 3차례 연주회를 가질만큼 전교생 11명의 어린이가 농악기를 다룰줄 알게 된 것이다.

또 삼성컴퓨터로 부터 6대의 컴퓨터를 기증받아 아이들에게 컴퓨터의 기초를 익히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수확은 마을과의 유대강화였다.

헌 교실을 철거해 남은 슬레이트로 할머니 혼자 사시는 초가지붕을 개량해준 일이며,마을길 넓히기작업등….

국무총리실로부터 격려편지를 받고 감격했던 3년간의 분교장 생활.

유명을 달리한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비록 난 그곳을 떠났지만 녀석들에게 마지막 남긴말,난 늘 그말을 기억하리라.

내마음 네곁에 있으리란 말을…
1992-12-1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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