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느때처럼 교문앞에 서서 학생들의 등교지도를 하노라면 마치 어둠의 긴터널을 간신히 빠져나왔다는 상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만성 신부전증이라는 어둠의 긴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5살적 긴 터널에 당황했던 기억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 손에 매달려 서울의 친척집에 놀러가느라 처음 서울행 기차를 탔던날,갑자기 기차가 터널에 들어서자 놀라 와락 울음을 떠뜨렸었다.어머니의 「못난 녀석」이라는 핀잔에 눈물을 닦아지만 두려움은 가시질 않았었다.
내가 다시 어둠의 터널로 들어선 것은4년전이었다.지난 88년 5월,그러니까 교련교사로 스승의 길을 택한지 2년째 되던해 처음 실시한 공무원 신체검사에서 신장에 이상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신장 이식 수술을 받으려면 우선 신장을 줄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의료보험의 혜택을 감안해도 수술비용만 2천만원을 넘는다니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형편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신발이 맞지 않을정도로 온 몸이 붓는등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 갔지만 5살적엔 옆에 계셨던 어머니도 없었고 악몽같은 긴터널을 빠져나갈 길은 도대체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자양고교에서 현재의 잠실고교로 이동 발령을 받았고 아픈 표시를 내지않은채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했지만 건강은 끝내 자신을 벼랑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절박감속에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을 하게되었고 나의 입원소식이 학생들에게 자연 알려지게 되었다.
수술비등으로 4년동안이나 수술을 미뤄왔다는 소식을 들은 학생들은 즉각 전교 대의원회의를 소집했고 2천4백명이 한마음이되어 나를 도와주기로 결의하고 단숨에 9백26만3천1백원을 모금해주었다.그후 동료 교사와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배려도 있었음은 물론이다.
내가 수술에 들어가던 날 5명의 제자들이 병원에 나와 한꺼번에 헌헐도 해주었다.내가 긴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이었고 사랑하는 제자들은 새생명의 불꽃이 돼준 것이다.
제자들은 5살적 어머니처럼 못난 녀석이라는 핀잔도 던지지 않았다.
앞으로 나의 삶은 분명 학교를 위한 것이요 건강은 학생들에게 되돌려 줘야한다는 생각이다.
만의 하나 교사직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긴 어둠의 긴터널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내가 아닌가.
만성 신부전증이라는 어둠의 긴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5살적 긴 터널에 당황했던 기억을 새삼스레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 손에 매달려 서울의 친척집에 놀러가느라 처음 서울행 기차를 탔던날,갑자기 기차가 터널에 들어서자 놀라 와락 울음을 떠뜨렸었다.어머니의 「못난 녀석」이라는 핀잔에 눈물을 닦아지만 두려움은 가시질 않았었다.
내가 다시 어둠의 터널로 들어선 것은4년전이었다.지난 88년 5월,그러니까 교련교사로 스승의 길을 택한지 2년째 되던해 처음 실시한 공무원 신체검사에서 신장에 이상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신장 이식 수술을 받으려면 우선 신장을 줄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의료보험의 혜택을 감안해도 수술비용만 2천만원을 넘는다니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형편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신발이 맞지 않을정도로 온 몸이 붓는등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 갔지만 5살적엔 옆에 계셨던 어머니도 없었고 악몽같은 긴터널을 빠져나갈 길은 도대체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자양고교에서 현재의 잠실고교로 이동 발령을 받았고 아픈 표시를 내지않은채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했지만 건강은 끝내 자신을 벼랑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절박감속에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을 하게되었고 나의 입원소식이 학생들에게 자연 알려지게 되었다.
수술비등으로 4년동안이나 수술을 미뤄왔다는 소식을 들은 학생들은 즉각 전교 대의원회의를 소집했고 2천4백명이 한마음이되어 나를 도와주기로 결의하고 단숨에 9백26만3천1백원을 모금해주었다.그후 동료 교사와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배려도 있었음은 물론이다.
내가 수술에 들어가던 날 5명의 제자들이 병원에 나와 한꺼번에 헌헐도 해주었다.내가 긴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이었고 사랑하는 제자들은 새생명의 불꽃이 돼준 것이다.
제자들은 5살적 어머니처럼 못난 녀석이라는 핀잔도 던지지 않았다.
앞으로 나의 삶은 분명 학교를 위한 것이요 건강은 학생들에게 되돌려 줘야한다는 생각이다.
만의 하나 교사직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긴 어둠의 긴터널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를 내가 아닌가.
1992-11-2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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