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아침에(외언내언)

생일아침에(외언내언)

입력 1992-11-22 00:00
수정 1992-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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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셰익스피어의 생일을 축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죠?난 나 자신의 생일도 잊고 지내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1906년 독설가 버나드 쇼가 엘렌 테리한테 쓴 편지 속에 있는 말이다.엘렌 테리는 19세기 말 영국이 낳은 명여배우.쇼와는 친숙한 사이로 편지를 많이 주고받고 있다.이 편지의 글투에서는 셰익스피어라고 하면 죽고 못사는 영국 사람들에 대한 반감도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의식이나 형식에 매이기 싫어하는 쇼의 품성도 엿보인다.

쇼 같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곧잘 자기 생일을 잊는다.세상의 남편들 가운데는 자기 아내 생일을 기억 못한 「죄」로 바가지 긁힌 사례 또한 적지 않고.

하지만 자기의 생일을 잊지 않는 것이 곧 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나에게 이승의 삶을 있게 한 생일이 아닌가.이날 섭리의 뜻을 헤아리고 부모의 공덕을 기릴줄 알아야 한다.그래서 우리의 한 시인(송희철)은 노래하지 않았는가.­『얼마나 고마운가/한장의 보자기에/목숨 하나 담아준 것이/저 미물에도/다만하나만을/고루 간직하게 하고/풀이슬 작은 방울에도 많은 뜻 헤아리게 하여…』(「생일에」)하고.모든 탄생에는 다 그 나름의 뜻이 서려 있는 법이다.

오늘이 서울신문의 생일.1945년 조국이 광복되던 해 뜻깊은 고고지성을 울렸으니 마흔일곱 살로 초로에 접어들려는 연륜이다.사람이라면 백발이 희끗거릴 무렵.그것은 갖은 신산고초를 헤쳐나온 표징이기도 하다.날마다의 역사를 기록해온 서울신문의 역정에 어느 하루인들 안온한 날이 있었던가.뛰고 외치고 겨루고 앞장서고.이 사회의 밀알이고자 거울이고자 목탁이고자 불밝히며 자강불식했던 발자취는 피와 땀으로 얼룩져 있다.

서울신문이 태어난,태어나야 했던 뜻을 한번 더 곱새기는 생일날 아침.열과 성이 넘치는 지면 꾸릴 결의를 엄숙하게 다진다.
1992-11-2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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