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양/한성판윤하다 별세… 장례비 없어(역사속의 청백리)

박수양/한성판윤하다 별세… 장례비 없어(역사속의 청백리)

우득정 기자 기자
입력 1992-11-19 00:00
수정 199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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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중종·인종·명종등 세조정을 거쳐 38년동안 호조·형조·한성판윤·지중추부사등을 역임한 명신 박수양(1491∼1554)은 5백년 사직에서 유일하게 사후 「백비」를 하사받았다.

명종은 생전 그의 청빈했던 관직생활과 강직한 성품을 기리기위해 서해바다 암석에서 흰돌을 골라 하사하면서 「박수양의 청렴결백함을 알면서 비에다가 새삼스럽게 결백했던 생전의 생활에 대해 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함을 욕보이는 결과를 빚을 지도 모른다」며 비문없이 그대로 세우라고 어명을 내렸다.

그는 오늘날 서울시장격인 한성판윤으로 재직하다가 세상을 떠났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향으로 운상할 비용조차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궁핍했다.

박수양이 관직생활을 하던 기간은 사색당파간의 정쟁이 치열했던 시기였다.서로 헐뜯는 와중에서 그를 모함하는 투서가 여러번 날아들었으나 그때마다 암행어사를 시켜 조사한 결과 「박수양은 벼슬길에 오른지 30여년간이나 되며 경상에까지 이르렀으면서도 서까레 두엇정도되는 집마저 없다」는 보고만 올라와 그의청빈한 생활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었다.

그는 매사를 원칙대로 처리했으며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여자를 임금님께 보이는 것은 국정을 어지럽히는 원인이 되고 뇌물을 밖에서 들어오게 하는 것은 정치를 문란시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비록 동료라 하더라도 부정은 눈감아 주지 않았다.그가 형조판서로 재직할 때 같은 판서직에 있는 동료의 친동생인 광주목사의 부정이 적발되자 동료나 주변의 청탁을 뿌리치고 끝내 그를 퇴임케 했다.그러나 그는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서는 적서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상소를 올릴 정도로 당시 시대상황으로는 감히 꿈꾸기 어려운 개혁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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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정혜공이라는 시호가 주어졌다.이는 결백수절하였다는 뜻의 정과 애민호여하였다는 뜻의 혜자를 합친 것으로 생전 그의 행동과 태도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우득정기자>
1992-11-1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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