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성 불평」에 빠진 한국(사설)

「사치성 불평」에 빠진 한국(사설)

입력 1992-07-24 00:00
수정 1992-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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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한두마디에 번번이 민감할 것은 아니다.그러나 때로는 남들이 나를 훨씬 정확하고 예리하게 간파하여 스스로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악습이나 실수를 찾게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지에 실린 다우존스사 카렌 엘리어트 하우스 부사장의 기고는 우리에게 그런 글이다.

그가 한국을 방문하여 반복해서 들었다고 지적한 말 몇가지는 이런 것이다.『우리나라가 쇠퇴하고 있다』 『우리는 경쟁력을 상실했다』 『우리의 근로윤리가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혼돈상황에 빠져 의기소침해 있다』 『우리에겐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등.이런 말은 사실상 요즈음의 우리가 예사로 던지고 있는 말들이다.나도 해보았고 남들에게서도 얼마든지 들어본 말이다.교수들도 걸핏하면 하고 있고 주부도 시정인도 입버릇처럼 하고있는 말들이다.필자가 정확하게 들춰낸 셈이다.

이런 우려의 말은 같은 시각에 워싱턴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의 수도에서도 들을수 있는 말이지만 『서울에서처럼 역설적이고도 근거없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어쨌든」개발도상국들에 모델을 제시했으며 「어쨌든」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면서도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성공적인 전환을 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그밖에도 한국은 경제자유화를 확대했고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고 중국및 동구 공산권국가들과도 유대를 맺게 되었으며 노동자와 학생들의 데모로 흔들리던 사회가 상당한 정도로 안정되게 구축한 나라인데,그런데도 한국인들이 『너무나』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는 것에 그는 의아해한다.

그의 간파력이 흥미있는 것은,성공보다는 실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이 매우 유사하며 두나라가 다같이 회응와 비판에 빠져있다는 현상을 파악하고 있는 점이다.페로와 정주영 현상까지도 같은 것에 대한 논지의 착안은 신선하다.그러나 정작 그의 논지가 지닌 신랄함은 다음에 나타난다.40년동안 억압적인 통치를 받아오면서 한국민을 회의하게 해온 문제는 정통성 문제였고 한국인들이 열성을 바쳐 그 문제를 해결해 왔는데도 『이 위대한 업적을 무시하고잊어버리거나 심지어 경멸하고 있는』것에 그는 강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그러면서 수년전 독재정권하에서는 경멸받던 『강력한 리더십』과 『법과 질서』를 지금 한국인이 입에 올리는 것을,그는 한국인의 건망증적인 현상으로 풀지않고 『사치한 불평』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정치적 자유를 가진 사람들만이 문제에 대해 불평할 수 있는,그런 사치스러움의 향유라는 것이다.

겨우 며칠 외국인이 스쳐본 인상으로 적은 것에 집착할 일은 아니다.그러나 잠깐 다녀가는 남의 눈에도 선연하게 보일만큼 『이상스런 불평』에 싸여서 7·5%나 성장하는 GNP를 불평하고,지난 5년간 급료가 패증했음에도 인플레율이 6%선에 이른다고 불평하고 있으며 기업인들은 세계적인 확장에도 불구하고 급료수준 및 이자율이 높다고 투덜거리는 우리가 너무도 『이상하다』고 말하는 그의 글속에,진정으로 하고싶은 말은 따로 숨겨져 있는 것같다.

자신들이 이룬 공을 경멸하는 우를 범해가며 「사치한 불평」에만 너무 취해서 뭔가를 그르칠지도 모를 우려를 언중에 감춰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이런 낭비스런 불평의 정체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것같다.
1992-07-2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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