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조운선/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8)

조선시대 조운선/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8)

장학근 기자 기자
입력 1992-07-22 00:00
수정 1992-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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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등 지방물산 서울로 운반한 관선/배밑부분 편편해 최고 1천석까지 실어

조선이 건국되면서 수도를 개성에서 지금의 서울인 한성으로 옮긴 이유중의 하나가 조운의 자연폐쇄에 있었다.개성을 굽이쳐 흐르던 예성강에 토사가 쌓여 선박들의 운항과 접안이 어렵게 되었다.이로 인해 지방의 세곡과 물산들이 적기에 도착되지 못하여 개성은 생필품 부족과 물가의 폭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조운이 편리한 한성을 수도로 정하게 되었다.수량이 많고 물맑은 한강은 조선을 부흥시킬 조운로로 이용되기에 제격이었다.

지금처럼 육로가 개발되지 못한 시절에 각 지방의 물산이 쉽게 유통될 수 있는 방편은 수로였다.작게는 나룻배로부터 크게는 병선이나 조운선이 동원되어 많은 물량을 적은 노동력과 저렴한 비용으로 먼 지방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특히 조운선은 국가에서 운영했던 관선으로서 각처에서 수납한 세곡과 중앙정부나 궁궐에서 소용되는 일용품이 거의 조운선으로 운반되었다.조운선은 쌀 천석·칠백석·육백석을 적재하는 세 종류가 있었는데,이를 운행하는 조졸은 겨우 22명·20명·18명 정도였으니 당시 조군의 항해술과 선적술은 대단한 것이었다.그 결과 조운선이 정박하는 나루와 포구에는 관련관리와 인부,그리고 상인들이 모이게 되고 이들의 식사와 침식을 위해 또 다른 주민들이 모여들게 되었다.처음에는 조그마한 마을로 시작된 나루와 포구는 얼마 되지않아 번창한 도시로 변하게 되었다.거기에는 다양한 해산물과 각처의 특산물이 쌓여 보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고 정겹게 만들었다.

조선시대 조운선이 정박하여 도시로 발전한 곳 중 대표적인 예는 서울의 용산과 마포,충청도의 충주,전라도의 덕성·법성·영산포,강원도의 원주·춘천,황해도의 금곡·조음,그리고 평안도의 안주·의주·삭주 등이 있다.조운선의 모양은 노와 범을 사용한 한선으로서 짐을 많이 싣기 위하여 선체의 밑부분이 편편하고 앞부분이 넓적한데 이는 모래와 뻘에도 쉽게 접안하기 위해 고안해낸 우리 선조들의 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장학근 해군사관학교 교수>

1992-07-2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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