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사회/윤시향 원광대교수·독문학(굄돌)

건망증사회/윤시향 원광대교수·독문학(굄돌)

윤시향 기자 기자
입력 1992-07-11 00:00
수정 1992-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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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건망증에 대한 이야기가 벌어졌다.어떤 이는 계단을 오르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자신이 계단을 오르는 중인지 내려가는 중인지 잊어버렸다고 했다.다른 이는 다리미질을 하다가 전화벨이 울리자 깜빡 잊고 다리미를 귀에 가져다 댔다.또 한 사람은 의사에게 가서 건망증 치료차 상담을 하며 장황하게 병세를 설명하고 있었다.그러다가 의사가 언제부터 그런 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했느냐고 묻자 이제까지 이야기하던 내용을 잊어버리고 『뭐가요?』하고 되물었다고 한다.이런 이야기들은 무덥고 짜증나는 여름날에 기분전환을 위한 우스갯거리로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게 했다.

별로 해롭지 않은 건망증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반면 잊지 않아야 할 것을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건망증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한국의 현대사에서만 보더라도 해방후 친일파의 척결로부터 시작하여 거의 모든 사건들이 철저하게 규명 내지 해결된 것을 찾기 힘들다.특히 권력층과 연결된 정치적 의혹사건들은 속시원히 밝혀진 게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그런데도 우리의 편리한(?) 건망증은 새로운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전의 일은 망각의 강으로 흘려버린다.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란 이전의 불행한 사건을 기억하고 되새겨서 또다시 그런 불행한 사건의 반복을 피하는 것이다.잘못된 일이 있을 경우,흔히 하는 말로 「죄는 용서하되 잊지는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이하여 우리는 매번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가.철저하지 않아서 그렇다.철저하다는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극단적이라는 것과는 다르다.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원인과 동기를 밑바닥까지 파헤쳐서 드러내는 것이 철저함이다.그럼 왜 이러한 철저함이 우리에게 필요한가.이것이 우리 의식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너무 빠른 망각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의식의 잠을 일깨우는 자명종을 항상 틀어 두자.너무 매끄럽게 돌아가는 「세계라는 기계속에서 윤활유가 아니라 모래」가 되자.

1992-07-1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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