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중생이 PC(퍼스널컴퓨터)통신을 통한 언어폭력에 자극을 받아 자살까지에 이르렀다.얼마나 심했길래 하는 생각이 한쪽에 있고,또 한쪽으로는 13세의 순진한 정서로서는 순간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울만한 사태가 있기는 있었겠다 생각이 든다.
이 사건은 한 소녀의 죽음 이상의 것을 시사한다.무엇보다 저질 폭력·음란 컴퓨터프로그램들의 문제를 일깨운다.최근 우리는 옷벗기기 게임정도를 뛰어넘어 남녀간 성행위장면까지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PC프로그램들이 10대청소년들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지난주 한 사회단체의 조사에는 97%이상의 PC사용청소년이 이 프로그램유를 실행해 보았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PC사용청소년은 나날이 늘고 있다.아직 어디서고 PC사용청소년이 얼마나 되느냐의 통계적파악은 되어 있지 않으나 한 예로 PC통신서비스를 하는 코텔의 경우 가입자 14만5천명중 82%가 청소년이라는 자료가 있다.미루어 볼때 PC사용청소년인구와 저질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악영향은 상식적 추정을 쉽게 뛰어넘는 것일수 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매체의 존재양식에서 제기된다.우리에게는 일반적으로 대부분 매체들이 선용보다는 악용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맹점이 있다.비디오사용만 하더라도 좋은 영상물보기에 쓰이기 보다는 폭력·외설물보기에 더 잘 사용되고 있다.이렇게 되는 이유는 물론무책임한 상업주의에 있다.보다 오락적이며 자극적인 내용물들을 팔기가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교양적 프로그램을 팔기보다 더 쉽다는 것은 대중문화사회에서는 평범한 현상이기는 하다.그러나 이러한 구조에 끊임없이 경고를 발하고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노력이 어느 사회에나 있다.우리에게는 이마저 실제로는 그다지 없다는 문제까지 갖고 있다.
또 다른 관점으로 상업주의적 저질화경향에 대응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개개인의 기초적 수용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저질문화의 수용은 결국 개개인의 선택문제이고 특히 정보화사회의 매체들은 더욱 더 그 수용을 개별화 시킨다.따라서 좋은 문화내용물만 사용하라는 사회적 권유는 기실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각자가 스스로 좋은 것을 찾고 저질품들을 버리는 선택을 해야한다.이때문에 교육은 질높은 문화내용물들을 고를수 있고 또 이를 보려는 취향을 가질만하게 문화감수성능력을 키워주는 일에 새로운 노력을 해야한다고 보고 있다.이 관점에서도 역시 우리는 문화감수성 교육프로그램들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보화사회를 주도하는 컴퓨터매체는 특히 개인적 능력여하에 따라 그 사용의 효율이 결정된다.컴퓨터를 통해 수백명이 수십년에 걸쳐서야 겨우 습득할 수 있는 정보와 자료를 일시에 얻어낼수 있는 것도 개인적 능력이고,이 매체를 단지 정서적 장애유발과 퇴폐적 생활화로 쓰고 마는 것도 개인적 능력이다.
불행하게도 오용이 더 많아지고 있는 컴퓨터문화현상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해 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그리고 법적제재의 형식보다는 개개인의 건강한 문화감수성을 바르게 키우는데 관심을 갖는게 옳을 것이다.그렇다면 우선 10대에 있어서는 가족단위의 선용노력이 필요하다.
이 사건은 한 소녀의 죽음 이상의 것을 시사한다.무엇보다 저질 폭력·음란 컴퓨터프로그램들의 문제를 일깨운다.최근 우리는 옷벗기기 게임정도를 뛰어넘어 남녀간 성행위장면까지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PC프로그램들이 10대청소년들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지난주 한 사회단체의 조사에는 97%이상의 PC사용청소년이 이 프로그램유를 실행해 보았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PC사용청소년은 나날이 늘고 있다.아직 어디서고 PC사용청소년이 얼마나 되느냐의 통계적파악은 되어 있지 않으나 한 예로 PC통신서비스를 하는 코텔의 경우 가입자 14만5천명중 82%가 청소년이라는 자료가 있다.미루어 볼때 PC사용청소년인구와 저질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악영향은 상식적 추정을 쉽게 뛰어넘는 것일수 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매체의 존재양식에서 제기된다.우리에게는 일반적으로 대부분 매체들이 선용보다는 악용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맹점이 있다.비디오사용만 하더라도 좋은 영상물보기에 쓰이기 보다는 폭력·외설물보기에 더 잘 사용되고 있다.이렇게 되는 이유는 물론무책임한 상업주의에 있다.보다 오락적이며 자극적인 내용물들을 팔기가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교양적 프로그램을 팔기보다 더 쉽다는 것은 대중문화사회에서는 평범한 현상이기는 하다.그러나 이러한 구조에 끊임없이 경고를 발하고 보다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노력이 어느 사회에나 있다.우리에게는 이마저 실제로는 그다지 없다는 문제까지 갖고 있다.
또 다른 관점으로 상업주의적 저질화경향에 대응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개개인의 기초적 수용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저질문화의 수용은 결국 개개인의 선택문제이고 특히 정보화사회의 매체들은 더욱 더 그 수용을 개별화 시킨다.따라서 좋은 문화내용물만 사용하라는 사회적 권유는 기실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각자가 스스로 좋은 것을 찾고 저질품들을 버리는 선택을 해야한다.이때문에 교육은 질높은 문화내용물들을 고를수 있고 또 이를 보려는 취향을 가질만하게 문화감수성능력을 키워주는 일에 새로운 노력을 해야한다고 보고 있다.이 관점에서도 역시 우리는 문화감수성 교육프로그램들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보화사회를 주도하는 컴퓨터매체는 특히 개인적 능력여하에 따라 그 사용의 효율이 결정된다.컴퓨터를 통해 수백명이 수십년에 걸쳐서야 겨우 습득할 수 있는 정보와 자료를 일시에 얻어낼수 있는 것도 개인적 능력이고,이 매체를 단지 정서적 장애유발과 퇴폐적 생활화로 쓰고 마는 것도 개인적 능력이다.
불행하게도 오용이 더 많아지고 있는 컴퓨터문화현상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해 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그리고 법적제재의 형식보다는 개개인의 건강한 문화감수성을 바르게 키우는데 관심을 갖는게 옳을 것이다.그렇다면 우선 10대에 있어서는 가족단위의 선용노력이 필요하다.
1992-06-1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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