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본 첫장편 「복어요리사」(이작가 이작품)

구광본 첫장편 「복어요리사」(이작가 이작품)

배종국 기자 기자
입력 1992-04-23 00:00
수정 1992-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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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인간구원 밀도있게 묘사/“자연·세계관 수정이 득도의 지름길”/“독·별미 이중성” 복어 소재의 4편 묶어/죽은 애인이 준 화두 푸는 과정이 내용

젊은 소설가 구광본씨(27)가 첫 장편소설 「복어요리사」(모음사간)를 내놓았다.

86년 「소설문학」에 소설 「검은 길」로 등단한뒤 한동안 시를 써서 「강」외 40여편의 시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구씨는 이번 첫 장편소설에서 「복어를 어떻게 먹는가」를 화두로 삼아 인간 구원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이문렬의 「사람의 아들」,김성동의 「만다라」,강인봉의 「구나의 먼 바다」등에 이어 문학과 종교가 만나는 공간에서의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은 작가의 탄탄한 문장력에 의한 밀도있는 묘사와 깊이 있는 사유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울러 이 소설은 구원이라는 관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현실과의 연관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특이한 구조로도 눈길을 끈다.죽은 애인으로부터 화두를 물려받은 한 소설가가 소설 쓰는 작업을 통해 화두를풀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그안에 네편의 소설이 삽입된 액자소설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이같은 소설의 구조적 특성은 이야기와 소설을 결합시키기 위한 것인데 시종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작품의 진정성을 더하고 있다.

줄곧 「복어」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주인공인 소설가가 미포항으로 여행와서 「복어를 어떻게 먹는가」라는 화두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그런데 도미나 고래가 아니고 왜 하필이면 복어인가.그 이유는 복어가 맛도 최고(?)이면서도 그 안에 독을 감추고 있는 이중적 성격의 존재이기 때문이다.그같은 복어의 상징적 속성을 밝히면서 그 안전한 요리법을 터득하는 일이야말로 이 작품의 주제인 구원의 길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주인공인 소설가는 복어의 이미지를 구약의 인물인 요나가 야훼에 의해 던져졌던 고래뱃속과 연결시킨다.그래서 결국 복어뱃속에 다름아닌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고통임을 깨닫는다.그 고통이란 바로 복어의 독과 같은 것이다.고통 가운데에서만이 구원의 가능성이 얘기된다고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했듯 구원가능성 문제의 대두는 현실에서의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구원의 가능성은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날개」의 작가 이상을 주인공으로 끌어들여 펼쳐나가는 제2장 「미궁」에선 구원의 길이 막막한 현실상황을 변용된 예수 수난사와 마르크스의 등장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이같은 막막함은 구원이 결코 원죄와 대속물만을 찾는 교회나 자연을 도구적으로 파악하는 공산주의에 의해 성취될 수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인 소설가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오직 자기자신의 마음에 이르는 길 뿐」이라는 헤세의 잠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그러나 작가는 자기 자신의 마음에 올바로 이르기 위해선 한 개인의 존재를 자연과 우주와의 관련 속에 폭넓게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끊임없이 변전하는 세계 속에서 관계태로서만 존재하는 자아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에 빚지고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을파악하여 세상을 올바로 보는 시각을 갖춘다면 중도의 길로써 능히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결론이다.

현재 우리 사회와 개인의 혼돈과 전망없음을 구원의 문제를 통해 풀어보려 한 소설 「복어요리사」는 그 모색의 첫단계로 자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신선하게 읽힌다.<백종국기자>
1992-04-2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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