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쥐고 불계승… 한인 최초의 현대식 대국보
구한말의 풍운아 고균 김옥균선생(1851∼1894)이 당대 일본바둑계의 최고봉이던 슈에이(수영)본인방과 둔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바둑기보가 10일 공개됐다.
고서연구가인 안영이씨(59·전 현현각대표)가 공개한 이 기보는 1910년 9월5일자 동경기계신보사가 발간한 「기계신보」와 1952년 9월12일자 국광서방발행 「위기세계」에 실린 총보및 각보·해설로 되어 있다.이 자료는 갑신정변에 실패한 고균이 일본에 망명하면서 슈에이본인방과 오랜 교분관계를 나눴다는 바둑계의 구전야사를 증명하기위해 안씨가 지난27년동안 발굴작업을 벌인끝에 최근 일본기원자료실과 일본 의회도서관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 기보는 1886년 2월20일 일본 도쿄의 본인방가에서 대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따라서 지금까지 최초의 현대식바둑기보로 알려져 있던 1918년6월9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당시 국수 백남규와 일본의 사이토4단의 경성위기대회 기보 보다 68년을 앞선 것이다.대국자를 고균의 일본이름인 이와다슈사쿠(암전주작)로 표기하고 있는 이 기보에는 슈에이 본인방과 6점접바둑끝에 2백30수만에 흑을 쥔 고균이 불계승을 거뒀다고 적고 있다.
자료를 검토한 김인9단은 『고균의 바둑은 실리위주이면서 치밀한 수읽기를 바탕으로 하는 공격적 변화를 구사하고 있다』고 우선 평가했다.그러면서 『일본바둑계에서 「명인중의 명인」으로 칭송받던 당대의 최고기사 슈에이를 상대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김9단은 이 기보로 미루어 고균의 실력을 요즘 아마추어 초단∼2단정도일 것으로 추측했다.다른 바둑전문가들도 당시로서는 본인방과 6점접바둑을 두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며 당시국내에서 유행하던 순장바둑(바둑알을 미리 16점을깔아 놓고 두는 우리나라 고래의 바둑)을 배웠던 고균이 이 정도의 기력을 보인 것만도 대단한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바둑을 두던 당시 고균은 36세,본인방은 35세였다.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일본에 도피하고 있던 망명객과 일본최고의 바둑명문가의 주인이던 제17·19대 본인방 슈에이가 나눈 10년에 걸친 바둑을 통한 수담은 지금까지 한·일 바둑계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 왔다.고균이 일본명치정부에 의해 요시찰인물로 낙인이 찍혀 요코하마에서 1천㎞나 떨어진 절해고도 오가사하라(소립원)에 유배중일때도 슈에이는 고균을 직접 찾아가 3개월동안 함께 기거하며 1만여개의 포석을 만들어 낼 정도로 두사람은 절친한 사이였다.<노주석기자>
구한말의 풍운아 고균 김옥균선생(1851∼1894)이 당대 일본바둑계의 최고봉이던 슈에이(수영)본인방과 둔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바둑기보가 10일 공개됐다.
고서연구가인 안영이씨(59·전 현현각대표)가 공개한 이 기보는 1910년 9월5일자 동경기계신보사가 발간한 「기계신보」와 1952년 9월12일자 국광서방발행 「위기세계」에 실린 총보및 각보·해설로 되어 있다.이 자료는 갑신정변에 실패한 고균이 일본에 망명하면서 슈에이본인방과 오랜 교분관계를 나눴다는 바둑계의 구전야사를 증명하기위해 안씨가 지난27년동안 발굴작업을 벌인끝에 최근 일본기원자료실과 일본 의회도서관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 기보는 1886년 2월20일 일본 도쿄의 본인방가에서 대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따라서 지금까지 최초의 현대식바둑기보로 알려져 있던 1918년6월9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당시 국수 백남규와 일본의 사이토4단의 경성위기대회 기보 보다 68년을 앞선 것이다.대국자를 고균의 일본이름인 이와다슈사쿠(암전주작)로 표기하고 있는 이 기보에는 슈에이 본인방과 6점접바둑끝에 2백30수만에 흑을 쥔 고균이 불계승을 거뒀다고 적고 있다.
자료를 검토한 김인9단은 『고균의 바둑은 실리위주이면서 치밀한 수읽기를 바탕으로 하는 공격적 변화를 구사하고 있다』고 우선 평가했다.그러면서 『일본바둑계에서 「명인중의 명인」으로 칭송받던 당대의 최고기사 슈에이를 상대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김9단은 이 기보로 미루어 고균의 실력을 요즘 아마추어 초단∼2단정도일 것으로 추측했다.다른 바둑전문가들도 당시로서는 본인방과 6점접바둑을 두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며 당시국내에서 유행하던 순장바둑(바둑알을 미리 16점을깔아 놓고 두는 우리나라 고래의 바둑)을 배웠던 고균이 이 정도의 기력을 보인 것만도 대단한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바둑을 두던 당시 고균은 36세,본인방은 35세였다.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일본에 도피하고 있던 망명객과 일본최고의 바둑명문가의 주인이던 제17·19대 본인방 슈에이가 나눈 10년에 걸친 바둑을 통한 수담은 지금까지 한·일 바둑계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 왔다.고균이 일본명치정부에 의해 요시찰인물로 낙인이 찍혀 요코하마에서 1천㎞나 떨어진 절해고도 오가사하라(소립원)에 유배중일때도 슈에이는 고균을 직접 찾아가 3개월동안 함께 기거하며 1만여개의 포석을 만들어 낼 정도로 두사람은 절친한 사이였다.<노주석기자>
1992-04-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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