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전국서 1백25명 밝혀져
일제가 국교생들을 정신대에 강제동원한 사실이 16일에도 경남 마산시등 전국 각지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날 현재 국교생을 정신대에 징발한 사실이 학적부나 관련자의 증언에 의해 확인된 것은 전국 20개교,1백25명으로 집계됐으나 앞으로 그 숫자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부산=김세기기자】 부산시 교육청은 16일 현재 낙민국교(구 유락국교)에서 51명,영도국교에서 3명등 2개 국교에서만 54명이 일제정신대에 동원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여자국교였던 낙민국교의 경우 1944년 6학년 3반에서는 전체 학생 30명중 29명이 일본인 담임교사의 권유로 차출됐음이 확인됐다. ◎남자국교생 13명/소년항공대 차출
한편 일제는 부산시내 부민·봉래국교 등 2개 국민학교 남자어린이 13명을 소년항공병등 군인으로 징발한 사실이 학적부에서 확인됐다.
【대구=이동구기자】 대구 효성국교(교장 지영복·62)에서도 1945년 국교생 6명이 정신대로 끌려간 것으로 16일 밝혀졌다.효성국교 관계자는 『당시 13살인 6학년 여학생 2명이 졸업직후 정신대로 끌려갔음을 학적부에서 확인했으나 이들의 신분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김동준기자】 1944년 여름 인천 영화국교 6학년 여학생 8명이 정신대로 끌려간 사실이 졸업생 최모씨(61·여·인천시 남동구 간석3동)에 의해 16일 밝혀졌다.
최씨는 『전쟁이 치열했던 1944년 여름 여자정신대에 지원하면 돈도 많이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일제의 유혹에 현혹된 같은 반 학우 8명이 일본으로 떠났다』면서 친구 8명과 떠나던 날 학교 정문에서 정신대복을 입고 당시 교장과 담임,그리고 학우 64명등이 기념촬영한 사진을 내보였다.
최씨는 또 『여학생들만 다녔던 영화국교는 기독교계열 학교였기 때문이었는지 정신대로 징용된 학생들이 적은 편이었으며 정신대로 끌려간 8명은 중위권 성적의 신체건강한 친구들로 모두 가정형편이 어려웠다』며 『어린 소녀들을 무자비하게 끌고간 일제의 잔학함에 치가 떨린다』고 덧붙였다.
【마산=강원식기자】 경남 마산시 회원구 산호2동 김복선씨(60·여·보험회사원)는 16일 『1944년 당시 성호국민학교 4학년(12살)이었는데 일본인 담임 니시오카 세츠코 선생(여·당시 35세가량)이 정신대에 갔다오면 중학교에 진학시켜 주겠다고 말해 어쩔 수 없이 친구 4명과 함께 정신대에 들어가 일본 도야마현소재 비행기공장에서 2년동안 일한 뒤 45년 12월 귀국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기숙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같은 또래의 조선여자 1백여명이 있었는데 모두가 점심은 빵조각으로 때우는등 하루 두끼의 식사를 제공받았고 12∼15시간씩의 중노동에 시달리며 월급없이 잡비정도만 받는등혹사당했다』고 말했다.
한편 마산 성호국교는 이날 당시의 학적부를 찾아 김씨등 4명(1명은 미확인)이 정신대에 끌려가 45년 3월31일 퇴학됐으나 한국으로 돌아온 뒤 재입학,46년 6월에 졸업한 사실을 확인했다.
일제가 국교생들을 정신대에 강제동원한 사실이 16일에도 경남 마산시등 전국 각지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날 현재 국교생을 정신대에 징발한 사실이 학적부나 관련자의 증언에 의해 확인된 것은 전국 20개교,1백25명으로 집계됐으나 앞으로 그 숫자는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부산=김세기기자】 부산시 교육청은 16일 현재 낙민국교(구 유락국교)에서 51명,영도국교에서 3명등 2개 국교에서만 54명이 일제정신대에 동원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여자국교였던 낙민국교의 경우 1944년 6학년 3반에서는 전체 학생 30명중 29명이 일본인 담임교사의 권유로 차출됐음이 확인됐다. ◎남자국교생 13명/소년항공대 차출
한편 일제는 부산시내 부민·봉래국교 등 2개 국민학교 남자어린이 13명을 소년항공병등 군인으로 징발한 사실이 학적부에서 확인됐다.
【대구=이동구기자】 대구 효성국교(교장 지영복·62)에서도 1945년 국교생 6명이 정신대로 끌려간 것으로 16일 밝혀졌다.효성국교 관계자는 『당시 13살인 6학년 여학생 2명이 졸업직후 정신대로 끌려갔음을 학적부에서 확인했으나 이들의 신분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김동준기자】 1944년 여름 인천 영화국교 6학년 여학생 8명이 정신대로 끌려간 사실이 졸업생 최모씨(61·여·인천시 남동구 간석3동)에 의해 16일 밝혀졌다.
최씨는 『전쟁이 치열했던 1944년 여름 여자정신대에 지원하면 돈도 많이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일제의 유혹에 현혹된 같은 반 학우 8명이 일본으로 떠났다』면서 친구 8명과 떠나던 날 학교 정문에서 정신대복을 입고 당시 교장과 담임,그리고 학우 64명등이 기념촬영한 사진을 내보였다.
최씨는 또 『여학생들만 다녔던 영화국교는 기독교계열 학교였기 때문이었는지 정신대로 징용된 학생들이 적은 편이었으며 정신대로 끌려간 8명은 중위권 성적의 신체건강한 친구들로 모두 가정형편이 어려웠다』며 『어린 소녀들을 무자비하게 끌고간 일제의 잔학함에 치가 떨린다』고 덧붙였다.
【마산=강원식기자】 경남 마산시 회원구 산호2동 김복선씨(60·여·보험회사원)는 16일 『1944년 당시 성호국민학교 4학년(12살)이었는데 일본인 담임 니시오카 세츠코 선생(여·당시 35세가량)이 정신대에 갔다오면 중학교에 진학시켜 주겠다고 말해 어쩔 수 없이 친구 4명과 함께 정신대에 들어가 일본 도야마현소재 비행기공장에서 2년동안 일한 뒤 45년 12월 귀국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기숙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같은 또래의 조선여자 1백여명이 있었는데 모두가 점심은 빵조각으로 때우는등 하루 두끼의 식사를 제공받았고 12∼15시간씩의 중노동에 시달리며 월급없이 잡비정도만 받는등혹사당했다』고 말했다.
한편 마산 성호국교는 이날 당시의 학적부를 찾아 김씨등 4명(1명은 미확인)이 정신대에 끌려가 45년 3월31일 퇴학됐으나 한국으로 돌아온 뒤 재입학,46년 6월에 졸업한 사실을 확인했다.
1992-01-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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