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20년·타계 16년만에 오서 유해 환국(특파원코너)

망명 20년·타계 16년만에 오서 유해 환국(특파원코너)

이기백 기자 기자
입력 1991-05-20 00:00
수정 1991-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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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민주투사 민젠티 재조명 활발/공산당에 저항… 교황 권유로 출국/성직 뺏긴 채 고국 민주화에 헌신

동구의 민주화에 1940년대 헝가리 대주교였던 요셉 민젠티의 생애와 역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논란이 최근 활발히 일고 있다. 이같은 논쟁은 민젠티 대주교의 유해가 지난주 망명지였던 오스트리아에서 고국으로 돌아와 그의 고향인 에첼콤 주교좌 성당 묘지에 안장되면서 불붙고 있다.

대주교의 안장식에는 천주교 고위성직자들은 물론 오스트리아 마지막 황제의 아들인 합스브르크가의 오토 왕세자를 비롯,헝가리의 괸츠 대통령,오스트리아의 아로이스 모크 외무장관,헝가리의 게자 예전스키 외무장관 등이 참석했다.

모크 장관은 추모사를 통해 『민젠티 대주교의 안장식이 거행되는 오늘은 헝가리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대장정에 오르는 역사적인 기념일일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헝가리국민들도 민젠티 대주교 유해의 환국이 헝가리가 진정으로 공산주의의 잔재를 훌훌 털고 「성경에 충실한 국가」가 되는 시발이라며 환영했다.

민젠티 대주교를 둘러싼 논쟁은 그가 1949년 공산정권하의 인민재판에서 종신형을 언도받았던 사실 자체보다는 공산정권에 의해 연출된 선전극인 재판을 근거로 25년 뒤 교황 바오로6세가 그를 성직에서 물러나게 한 결정과 이에 대한 가톨릭교계의 소극적인 대응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교황의 조치가 옳았는가 아니면 공산정권의 학정과 싸우다 오스트리아로 망명길에 올랐던 추기경이 옳았는가이다.

공산 헝가리 정권에 대해 협력을 거부하고 완강한 저항을 몸으로 실천했던 민젠티 대주교는 이로 인해 60년대 들어 공산주의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바라고 있던 바티칸으로부터 미움을 사게 됐다.

민젠티 대주교는 45년 비오12세 교황 때 헝가리 에첼콤 대주교로 피명,최고의 성직자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뒤인 48년 12월26일 공산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당국에 체포돼 6주 후에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되는 몸이 되었다.

56년 헝가리 반공의거가 일어나자 헝가리 당국은 민심수습을 위해 대주교를 6일 동안 석방했으나 민중봉기는 유혈진압으로 끝났고 진압이 끝날 즈음 대주교는 소련군의 도움을 받아 헝가리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15년 동안을 그곳에서 보냈다.

헝가리 정부는 교황청을 통해 끈질기게 민젠티 대주교의 출국을 요구했으며 대주교는 마침내 교황청의 권유를 받아들여 헝가리를 떠났다.

대주교는 망명중에도 헝가리의 상황이 국민들의 생활과 종교적 믿음에 역행하고 있음을 계속 지적했으며 헝가리 국민들에게 민주화 의식을 심어주려 애를 썼다.

대주교는 75년 5월6일 83세를 일기로 타계,망명지에 묻혔다가 16년 만에 비로소 그가 평생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온 자유헝가리로 말없이 환국을 한 것이다.<베를린=이기백>
1991-05-2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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