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병사한 허담은 북한 노동당 정치국위원 겸 대남담당비서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을 맡아 대남전략을 총괄해 온 직업외교관.
숨진 허담은 1925년 함북에서 출생,48년 모스크바대를 졸업한 후 외교부 참사로 출발,62년 외교부 부부장,70년 외교부장으로 승진하는 등 김일성 종매부라는 인척관계를 이용,눈부신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73년부터는 부총리 겸 외교부장으로 사실상 북한외교를 전담했으며 83년 11월 정치국원(서열 10위)으로 승진하면서 부총리 겸 외교부장자리는 김영남에게 넘겨주고 대남담당비서로 대남사업에만 전념해 왔다.
김일성에 대한 충섬심이 대단하고 정치감각도 뛰어나 큰 신임을 받고 있었으며 88년 김이 제안한 남북연석회의의 북측 준비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89년부터는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으로도 활약해 왔다.
또 이 해에 방북한 문익환 목사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임수경양을 접견했으며 6월에는 모스크바에서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와 회동하는 등 남측 인사들도 자주 접촉해 왔다. 또 최근에는 김정일을 거의 빠짐없이 수행해 왔다.
숨진 허담은 1925년 함북에서 출생,48년 모스크바대를 졸업한 후 외교부 참사로 출발,62년 외교부 부부장,70년 외교부장으로 승진하는 등 김일성 종매부라는 인척관계를 이용,눈부신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73년부터는 부총리 겸 외교부장으로 사실상 북한외교를 전담했으며 83년 11월 정치국원(서열 10위)으로 승진하면서 부총리 겸 외교부장자리는 김영남에게 넘겨주고 대남담당비서로 대남사업에만 전념해 왔다.
김일성에 대한 충섬심이 대단하고 정치감각도 뛰어나 큰 신임을 받고 있었으며 88년 김이 제안한 남북연석회의의 북측 준비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89년부터는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으로도 활약해 왔다.
또 이 해에 방북한 문익환 목사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임수경양을 접견했으며 6월에는 모스크바에서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와 회동하는 등 남측 인사들도 자주 접촉해 왔다. 또 최근에는 김정일을 거의 빠짐없이 수행해 왔다.
1991-05-1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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