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한 김영균군 아버지의 진정 앞에서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가족만의 슬픔으로 끝나게 해 달라』는 그의 간절한 당부가 자식 가진,나라를 걱정하는 대부분 국민들의 가슴을 울려준다.
『희생은 내 아들에게서 끝나야 한다. 영균이를 열사로 부르며 영웅시하면 또다른 비극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호소하는 그의 말에서 누구도 하지 못할 용기와 깊은 사려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젊은 혈기를 자극하여 죽음을 충동하는가를 정곡을 찌르듯 그는 말해주고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보다,자식 잃은 비극의 그 깊은 슬픔의 늪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 부모만이 자식을 죽게 만드는 어떤 일과도 맞설 수가 있는 것이다.
「열사」로 백번을 거듭 난들,부모 가슴에 장대같은 못을 박고 앞서간 한을 메워줄 수 있겠는가. 이 아버지의 호소를 「대책회의」측은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균군 아버지의 가슴에는 아들을 죽게 한 자극적인 요소가 「분신을 영웅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고 있음을 보며,우리 또한 그 생각과공감을 하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운동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열사 칭호를 주어가며 분신을 영웅시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측면이 아버지의 진실한 눈에는 띌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죽은 아들의 뜻도 그런 것은 원치 않으리라는 것이 아버지의 말이다. 이 말도 깊이 음미하게 하는 말이다.
이 슬픈 아버지가 간곡하게,그리고 단호하게 원한 것은 「가족장」이었다. 열사도 싫고 투쟁도 싫으니 사랑하는 가족끼리 슬픔과 위로를 나누고 떠나보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소망은 이루어졌다. 『1백일이 걸려도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는 결연함을 거슬러 또다른 한을 남기게 하지 않은 일이 다행스럽다.
분신이 잇따르자 「대책회의」,운동권 대표,재야권들도 격정의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분신하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한다. 그들은 먼저 영균군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줄로 안다. 기다렸다는 듯이 빈소를 접수하다시피 하여,학생들로 하여금 삼엄한 문번을 서게 하고 부모와 동기간 등 육친인 유가족조차도 뜻대로 못하게 하는 「투쟁방식」으로 장례식을 몰고가는 「대책회의」와 운동권 지도층이 있는 한 분신은 「열사」로 태어나고 그 죽음에 대한 동경과 충동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분신한 젊은이들이 남긴 말은 한결같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기본적인 목표이기도 하지만 분신의 직접목적은 「투쟁열기의 확산」에 있다. 이 확산행위에 「젊은이의 죽음」을 이용하는 방식을 운동권 지도부가 자제해주어야 젊은이들이 죽음의 유혹을 자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뜻이 아무리 의롭고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젊은이의 죽음을 제단에 바치고 얻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불의」다. 왜냐하면 그 명분을 누리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나눠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죽음까지 강요한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 아들의 죽음에서조차 소외된 아버지의 진솔하고 올곧은 말을 모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끝내 말로만 「분신의 자제」를 호소하고 행동으로는 딴청을 부리는 운동권의 「전권」세력의 정체가 이제는 조금씩 국민 앞에노출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슬프고 절통한 아버지의 소리에 귀기울여 그의 뜻이 널리 전달되기를 빈다.
『희생은 내 아들에게서 끝나야 한다. 영균이를 열사로 부르며 영웅시하면 또다른 비극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호소하는 그의 말에서 누구도 하지 못할 용기와 깊은 사려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젊은 혈기를 자극하여 죽음을 충동하는가를 정곡을 찌르듯 그는 말해주고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보다,자식 잃은 비극의 그 깊은 슬픔의 늪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런 부모만이 자식을 죽게 만드는 어떤 일과도 맞설 수가 있는 것이다.
「열사」로 백번을 거듭 난들,부모 가슴에 장대같은 못을 박고 앞서간 한을 메워줄 수 있겠는가. 이 아버지의 호소를 「대책회의」측은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영균군 아버지의 가슴에는 아들을 죽게 한 자극적인 요소가 「분신을 영웅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고 있음을 보며,우리 또한 그 생각과공감을 하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운동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열사 칭호를 주어가며 분신을 영웅시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측면이 아버지의 진실한 눈에는 띌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죽은 아들의 뜻도 그런 것은 원치 않으리라는 것이 아버지의 말이다. 이 말도 깊이 음미하게 하는 말이다.
이 슬픈 아버지가 간곡하게,그리고 단호하게 원한 것은 「가족장」이었다. 열사도 싫고 투쟁도 싫으니 사랑하는 가족끼리 슬픔과 위로를 나누고 떠나보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소망은 이루어졌다. 『1백일이 걸려도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는 결연함을 거슬러 또다른 한을 남기게 하지 않은 일이 다행스럽다.
분신이 잇따르자 「대책회의」,운동권 대표,재야권들도 격정의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분신하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기도 한다. 그들은 먼저 영균군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줄로 안다. 기다렸다는 듯이 빈소를 접수하다시피 하여,학생들로 하여금 삼엄한 문번을 서게 하고 부모와 동기간 등 육친인 유가족조차도 뜻대로 못하게 하는 「투쟁방식」으로 장례식을 몰고가는 「대책회의」와 운동권 지도층이 있는 한 분신은 「열사」로 태어나고 그 죽음에 대한 동경과 충동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분신한 젊은이들이 남긴 말은 한결같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기본적인 목표이기도 하지만 분신의 직접목적은 「투쟁열기의 확산」에 있다. 이 확산행위에 「젊은이의 죽음」을 이용하는 방식을 운동권 지도부가 자제해주어야 젊은이들이 죽음의 유혹을 자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뜻이 아무리 의롭고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젊은이의 죽음을 제단에 바치고 얻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불의」다. 왜냐하면 그 명분을 누리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나눠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죽음까지 강요한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 아들의 죽음에서조차 소외된 아버지의 진솔하고 올곧은 말을 모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끝내 말로만 「분신의 자제」를 호소하고 행동으로는 딴청을 부리는 운동권의 「전권」세력의 정체가 이제는 조금씩 국민 앞에노출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슬프고 절통한 아버지의 소리에 귀기울여 그의 뜻이 널리 전달되기를 빈다.
1991-05-05 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