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우호조약」 그 안팎(사설)

한·소 「우호조약」 그 안팎(사설)

입력 1991-04-23 00:00
수정 1991-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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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 관계의 급진전으로 우리 정부나 국민 모두가 너무 들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불과 1년 사이에 45년의 적대관계가 청산되고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는가 하면 양국 정상이 교환방문을 하게 되는 눈부신 속도는 우리를 흥분시킬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침착하고 신중한 대응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제주정상회담에서 제의한 한소 우호조약 체결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과 혼선을 보면서 특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한소 우호협력조약의 체결은 한소 관계의 경과와 발전속도로 미루어 필요한 조치일지 모른다. 때문에 제의되었고 환영을 받은 것으로 안다. 다만 성격과 내용이 문제일 것이다. 이 점은 우리 정부의 정리된 입장발표대로 후속의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협의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소련의 그러한 제의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기습을 당해 우왕좌왕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소 관계는 어떤것이며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한다면 그 성격과 내용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등의 기본적인 대비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이번 혼선의 소동이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소 관계보다는 더 중요한 미일 등 우방과의 기존 우호협력관계를 배려하는 충분한 조정을 거친 우리의 기본입장이 진작에 마련되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소련의 전격제의로 혼선이 일어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소가 공동대응해야 할 가상의 적이 없는 상황에서 소 제의에 군사적인 의미가 있을 수 없는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 동안 소련이 사회주의국들과 맺은 우호조약이 주로 방위동맹의 군사적 성격이 강했다는 관례를 강조한 일본 등의 외신보도에 당황하고 서둘러 미일 공사에게 해명하는 소동을 빚은 것은 결국 우리의 대비가 부족했고 미일 등 우방과의 협의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한소 우호협력조약은 정치적 저의라든가 군사적 의미가 없고 특정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공동대응의 성격이 아닌 순수한 의미의 상호 경제,사회,문화,과학기술 등의 우호협력을 증진시킬 그런 조약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이 점은 우선 소련측에 충분히 설명되어야 할 것이고 한소 관계발전으로 상대적 소외감을 느낄지 모르는 미일 우방과도 양해가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가 관계를 개선해가야 할 중국에도 그러한 우리의 진의가 전달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동안 적과 우방이 분명한 상황에만 익숙해왔다. 소 공산권은 적이었고 미 서방은 우방이었다. 북방외교 이후 미국과 서방이 우방인 상황에는 변화가 없으나 소련·중국과 공산권도 이제는 더 이상 적은 아닌 상황의 혼돈을 겪고 있다. 북방외교에 몰두하다 우방외교에 소홀할 수 있고 우방외교에 너무 신경을 쓰다 북방외교를 그르칠 위험도 있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새로운 상황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면서 북방외교와 우방외교를 잘 조화시켜나가는 우리 나름의 전방위외교를 개척해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1991-04-2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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