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경찰의 타협약속이행 빛나
주말인 2일 하오3시 서울 종로3가 파고다공원안 팔각정 앞에선 민중당 주최로 당원과 학생 등 1천여명이 모인가운데 「수서특혜 은폐조작 부패정권 규탄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하오4시50분쯤 집회를 마친 군중들은 가두행진에 나섰고 공원 정문에선 전경이 이를 막기 위해 2중 3중의 방벽을 쌓고 있었다. 대회참석자들이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정문을 사이에 두고 전경과 대치하고 있는동안 정문밖에서는 관할 종로경찰서장 등 경비책임자들과 대회주최측 대표들과의 협상이 시작됐다.
이날 협상은 주최측의 가두행진 요구에 경찰은 절대로 그럴수가 없다는 입장때문에 장시간 팽팽한 의견대립이 계속됐다.
지난달 26일 민중당은 집회의 신고서를 경찰에 제출하면서 공원안에서 집회를 가진뒤엔 시청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경찰은 공원안에서의 집회는 허용하되 가두행진만은 허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었다.
이에 민중당은 가두행진코스를 파고다공원에서 을지로1가 을지로입구역까지라도 허용해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의 회신은 역시 가두행진만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마당이어서 이날 협상이 그리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기자의 예측이었다.
특히 민중당의 입장은 밤을 새우고서라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가두행진을 벌여 국민들에게 「나약하지 않다」는 위상을 심어줘야 할 의무감(?)을 갖고 있었고 경찰의 입장은 집회 참가자들 가운데 민중당원 말고도 적지않은 학생들이 끼어 있어 말로는 평화시위를 한다고 해도 자칫하면 폭력시위로 변질될 우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주최측의 요구에 선뜻 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기자의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양측이 한보씩 양보한 끝에 그야말로 보기힘든 의견일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플래카드를 버리고 대열은 3열로 하여 인도를 따라 지하철 을지입구역까지 행진한다」는데 합의를 본 것이다.
「절대로 가두행진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경찰과 「반드시 가두행진을 벌여야겠다」는 상반된 두 주장이 1시간 남짓동안 진행된 토론과타협끝에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합의했다.
『여러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평화적인 가두행진을 해야합니다』
가두행진대열은 하오6시15분쯤 인파가 북적대는 지하철역 지하도에 도착,이곳에서 5분여동안 구호를 외친 뒤 자진해산해 각자 귀가길을 재촉했다. 이날 집회와 가두행진을 지켜본 시민들이 우리의 시위문화도 이날과 같은 모습으로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신문사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운 듯 했다.
주말인 2일 하오3시 서울 종로3가 파고다공원안 팔각정 앞에선 민중당 주최로 당원과 학생 등 1천여명이 모인가운데 「수서특혜 은폐조작 부패정권 규탄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하오4시50분쯤 집회를 마친 군중들은 가두행진에 나섰고 공원 정문에선 전경이 이를 막기 위해 2중 3중의 방벽을 쌓고 있었다. 대회참석자들이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정문을 사이에 두고 전경과 대치하고 있는동안 정문밖에서는 관할 종로경찰서장 등 경비책임자들과 대회주최측 대표들과의 협상이 시작됐다.
이날 협상은 주최측의 가두행진 요구에 경찰은 절대로 그럴수가 없다는 입장때문에 장시간 팽팽한 의견대립이 계속됐다.
지난달 26일 민중당은 집회의 신고서를 경찰에 제출하면서 공원안에서 집회를 가진뒤엔 시청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경찰은 공원안에서의 집회는 허용하되 가두행진만은 허용할 수 없다고 통보했었다.
이에 민중당은 가두행진코스를 파고다공원에서 을지로1가 을지로입구역까지라도 허용해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의 회신은 역시 가두행진만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마당이어서 이날 협상이 그리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기자의 예측이었다.
특히 민중당의 입장은 밤을 새우고서라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가두행진을 벌여 국민들에게 「나약하지 않다」는 위상을 심어줘야 할 의무감(?)을 갖고 있었고 경찰의 입장은 집회 참가자들 가운데 민중당원 말고도 적지않은 학생들이 끼어 있어 말로는 평화시위를 한다고 해도 자칫하면 폭력시위로 변질될 우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주최측의 요구에 선뜻 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기자의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양측이 한보씩 양보한 끝에 그야말로 보기힘든 의견일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플래카드를 버리고 대열은 3열로 하여 인도를 따라 지하철 을지입구역까지 행진한다」는데 합의를 본 것이다.
「절대로 가두행진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경찰과 「반드시 가두행진을 벌여야겠다」는 상반된 두 주장이 1시간 남짓동안 진행된 토론과타협끝에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합의했다.
『여러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평화적인 가두행진을 해야합니다』
가두행진대열은 하오6시15분쯤 인파가 북적대는 지하철역 지하도에 도착,이곳에서 5분여동안 구호를 외친 뒤 자진해산해 각자 귀가길을 재촉했다. 이날 집회와 가두행진을 지켜본 시민들이 우리의 시위문화도 이날과 같은 모습으로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신문사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운 듯 했다.
1991-03-0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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