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자이자 언어학자이기도 한 눈솔 정인섭 교수가 생전에 진반농반으로 한 말이 생각난다. 언젠가 국제언어학자대회에 나갔을 때란다. 건네어 준 명함을 들여다 보던 서양학자가 묻더라는 것이다. 『당신 중국 사람이오?』 ◆물론 명함 어딘가에는 「한국」사람임을 알리는 대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사람이냐고 묻는 서양 학자는 한국에 고유한 글자가 있음을 아는 사람이었던지도 모른다. 정 박사는 그때부터 한글로 된 명함을 가지고 국제회의에 나갔노라고 말한다. 그 질문에 부끄러워졌다면서. 하지만 색동회 창설 멤버이며 국어연구에도 정열을 쏟았던 정 교수이고 보면 스스로 지어낸 얘기였을 수도 있다. ◆설사 지어냈다 해도 눈솔 선생의 『중국 사람이오?』에는 의미가 담긴다. 한국·중국·일본이 똑같이 한자로 이름을 짓는 나라이긴 하다. 그래도 일본의 경우는 한국·중국과 좀 다르다. 성 두 자에 이름 두 자의 경우가 많고 글자 수도 대체로 4∼5자이다. 이에 비해 한국과 중국은 성 한 자에 이름 두 자 쪽이 압도적이다. 물론어느 나라고 예외는 있는 것이지만. 그래서 서양사람으로서는 외형상으로 한·중의 구별이 어렵다. 눈솔의 말 뜻은 『한국사람다운 이름을 짓고 쓰자』는 것 아니었을까. ◆지난 7월 대법원에 의해 작명에 한자를 제한하는 호적법 개정안이 추진되었을 때 반대여론도 적잖이 일었다. 전산화에 맞추는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오랜 관습을 깨뜨릴 수 없다면서. 항렬의 문제,제한으로 인한 동명이인의 문제 등등이 제기되었다. 그런가 하면 찬성하는 의견 또한 적지 않았고. 그런데 그 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작명에 사용할 수 있는 한자 2천7백31자도 알려진다. 여러 가지 검토를 거친 끝의 확정이다. ◆이때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의 이름에 대한 생각도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 「정인섭→정인섭」보다는 「정 눈솔」 쪽의 발상 같은 것으로. 한자의 사용여부에서 한 걸음 더 나간 「한국적인 이름」으로의 전환말이다.
1990-12-2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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