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희선생의 영전에…

최정희선생의 영전에…

양문길 기자 기자
입력 1990-12-22 00:00
수정 1990-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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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인 최정희선생님.

어찌하여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홀연히 떠나실 수 있습니까. 선생님께서 견디어오신 그 모진 풍상에 대해 일언반구의 미련도 남기지 않으시고 창공을 비상하는 한마리 백학처럼 그렇게 훨훨 날아 가실 수 있단 말입니까.

며칠 전,이 미천한 제자들은 선생님의 따스한 손을 꼭 부여잡고 부디 이번 고비만 넘겨 주십사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 않았습니까. 그 간청이 들리지 않으시던가요. 그 염원이 가슴에 닿지 않으시던가요.

우리 정릉그룹을 눈먼 봉사들의 모임이라고 부르시던 선생님.

여기 문수룡을 비롯해 제하,문진,영은,정희,재연,청조,경옥이 이제야말로 눈앞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눈앞이 캄캄하기로 말하면 홀로 덩그렇게 남은 지원,채원에게 비길 수 있겠습니까마는….

풍진 가득한 이 세상에 눈먼 봉사로 남은 우리들은,그러나 선생님,그토록 단아하고 청정한 모습의 담인,선생님의 그 자태를 마음의 눈속에 깊이깊이 각인하고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남기신 「지맥」 「인맥」 「천맥」은 우리 문단의 휼륭한 보배로 간직될 터이고,장강과도 같이 도도한 「인간사」는 이 땅에 줄지어 이어올 후배 문인들에게 영양가 높은 자양분으로 면면히 녹아 흐를 것입니다.

아아 최정희선생님. 시간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 못난 제자가 처음 선생님을 뵈었던 1960년 어느 신춘문예 시상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때 고등학교 제복을 입은 이 문학소년에게 놀란 표정으로 당황해 하던 그 모습이 너무도 눈에 선합니다. 그로부터 30년,이 무능한 제자는 선생님 곁에 맴돌기만 했을 뿐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선생님이 이땅에 남기고 가신 그 자리,그 푸근하고 따스한 공간을 보듬어 안고 갈무리하면서,담인선생님을 기억하려 합니다.

선생님,부디 평안히 가시옵소서. 1990년 12월21일 양문길<소설가>
1990-12-2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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