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나쁜 선택」… 경제회생이 “발등의 불”

「덜 나쁜 선택」… 경제회생이 “발등의 불”

강석진 기자 기자
입력 1990-12-11 00:00
수정 1990-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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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웬사 대통령」 이후의 폴란드/국민들의 「부자꿈」기대 큰 부담/「1인당 1만불 배분」등 공약실천 주목/“개혁지연땐 독재 가능성” 경계소리도

어제의 전기공 레흐 바웬사가 이제 폴란드의 첫 민선대통령이 됐다.

10년전 연대노조를 결성키 위해 그다니스크 레닌조선소의 담을 넘던 홀쭉한 모습의 그가 이제 뚱뚱해진 모습으로 폴란드를 지도하게 된 것은 마치 한편의 장엄한 행진곡을 듣는 느낌을 준다. 더욱이 그와 그의 연대노조가 공산당지배 하에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간난신고는 오늘의 영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비록 그가 지난달 25일 1차 투표에서 옛 동료인 마조비에츠키 총리와의 「집안 싸움」에다 21년이나 조국을 떠나 민주화에 일조도 하지 않은 신예 티민스키의 돌풍에 말려 40%도 득표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2차 투표에서 74%를 득표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퇴색했던 이미지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게 됐다.

그는 43년 9월 중부 폴란드의 포포프에서 태어났다. 독일 포로였던 그의 아버지가 45년 사망하고 그의 어머니가 삼촌과 결혼한 뒤에도 가난한 생활은 여전,그는 일찍부터 도브르진에서 전기공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인생은 70년 크리스마스때 식료품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던 동료들이 보안군에 의해 피살되는 것을 보면서 전환점을 만나게 된다. 76년부터 공식노조와는 별개의 노조결성에 나섰고 80년에는 조선소의 담을 넘어 파업을 이끌어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조지도자로 일어섰다. 82년에는 15개월이나 구금됐었고 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83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됐다.

수개월전 임기가 4년이 넘게 남은 야루젤스키 대통령을 거의 강제로 밀어내다시피 하면서 바웬사가 대통령에 오르겠다고 했을 때부터 바웬사가 뜻을 이루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마조비에츠키 총리의 개혁이 미진,개혁을 가속화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고 출마의 변을 내세웠지만 그는 그동안 많은 상처를 입었다.

우선 그는 연대노조내 중도좌파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마조비에츠키는 물론 연대노조의 이론가인 게메레크와 아담 미크닉으로부터 「예측할 수 없고 무책임하며 제멋대로이고 무능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심하게는 그가 뜻하는 개혁이 맘 먹은대로 추진되지 않을 경우 페론같은 독재자가 될 것이라는 경계의 소리마저 있었다.

바웬사는 2차투표를 앞두고 이들에게 지지를 호소했고 이들은 바웬사를 지지했지만 「가장 좋은 선택」으로서가 아니라 「가장 덜 나쁜 선택」으로서 지지했을 뿐이다. 앞으로 이들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가 정치가로서의 바웬사에게는 커다란 짐으로 남을 것이다.

바웬사는 선거유세 기간중 철저한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그의 선거공약은 때로 모호하고 때로 허황된 내용이 많았다. 그는 마조비에츠키 정부하에서 옛 공산당 엘리트들이 다시 요직에 등용되거나 마조비에츠키 정부의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농민과 노동자들의 경제형편이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가 내세운 공약은 시장경제의 가속화,사유재산의 무제한 허용,가격통제 해제,국민 1인당 1만달러씩 배분 등이지만 실현 불가능하거나 모호한 것들이다. 또 바웬사는 마조비에츠키의 긴축정책을 비판했지만 긴축 이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마조비에츠키의 경제정책은 인플레 수습 통화안정 수출증대 등의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 그가 새 내각의 총리로 마조비에츠키 정부의 재무장관이자 긴축정책의 선봉장인 발체로비치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바웬사의 정책도 마조비에츠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바웬사에게 지워진 가장 큰 짐은 티민스키가 폴란드 국민으로부터 무려 26%에 달하는 지지를 끌어 냈다는 점이다. 티민스키가 내세운 「부자의 꿈」을 바웬사가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동구 최초의 탈공산화를 이끌어 낸 연대노조 지도자로서의 바웬사 바람은 이번 선거로 멈추어 섰다. 그는 이제부터 실적으로 말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바람으로 세상을 바꾸던 시대는 지나갔다. 바람이 멈추면 더 이상 바람이 아니다. 그는 마조비에츠키가 걸을 수 밖에 없었던 고되고 힘든 현실의 길을 한걸음씩 내디딜 수 밖에 없을 것이다.<강석진기자>
1990-12-1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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