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자가 큰 저택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불이 났다. 그 부자는 겨우 빠져 나왔으나 되돌아보니 아이들은 놀이에 열중하여 저택이 타는 줄 모른다. 『빨리 나와!』 소리쳐도 못 들은 체. 부자는 꾀를 낸다. 『지금 문밖에 양의 차,소의 차,사슴의 차가 왔다. 빨리 와서 타』. 그러자 아이들은 다투어 나왔다. ◆「법화경」의 비유품에 적혀 있는 「화택의 비유」이다. 여기서 말하는 화택이란 인간이 사는 세계. 이 화택에서는 애욕의 화염,탐욕의 화염,명예·권세의 화염이 타오른다. 하건만 그 저택 속의 아이들과 같이 사람들은 화염 무서운 줄 모르고 놀이에 열중하며 동분서주한다. 부처님은 그 화염을 끄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그게 어디 꺼지는 불이던가. 그래서 속세인은 영원히 「화택 속의 아이들」일밖에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은둔한 지가 오늘로 2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산사생활이다. 이제 「화택 속의 아이들」이 눈에 잡히는 것일까. 간간이 새어 나오는 소식은 초탈해가는 불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며칠 전 백담사로 찾아간 서울신문 기자에게도 말했다.『잘못된 건 이제 모두 내 탓이려니 합니다』. 이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의 갈등을 경험한 것일까. ◆권좌에 있던 사람만이 권좌에서 밀려났을 때의 아픔과 외로움을 안다고 옛사람들은 말했다. 그 아픔과 의로움은 부렸던 권세의 돗수에 정비례하는 것 입산한 초기의 전 전 대통령도 그랬다. 자신이 권좌에 있을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굴던 일부 인사가 등 돌리며 훼폄하는 것이 견디기 어려운 듯했다. 그것은 얼마 전 그 영부인도 토로했던 심경. 그런데 이제 그 모두를 「내 탓」으로 돌리는 불심을 보여 주기에 이른다 「화택 속의 아이들」을 알게 된 때문일까 ◆「채근담」의 한 구절『꾀꼬리 울고 꽃이 우거져 산과 골이 아름다워도 이 모두 다 건곤 한때의 환경. 물 마르고 나뭇잎 떨어져 바위돌 벼랑이 앙상히 드러남이여. 이곧 천지의 모습이로다』. 이 「천지의 모습」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리라.
1990-11-23 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