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합을 위한 문화교류/통일철학의 정립부터(사설)

민족통합을 위한 문화교류/통일철학의 정립부터(사설)

입력 1990-11-12 00:00
수정 1990-11-1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꽃파는 처녀」가 「고향방문」의 완강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문화」가 「통일흥정」의 만만한 「인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통일음악회니 남북영화교류 따위로 「물꼬」가 트였음을 성급하게 진단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통일상품」의 시속적인 매력에 편승하여 온갖 교류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세력과 집단들이 중구난방으로 넘치는 남쪽에 비하면 일사불란하고 물샐틈이 없는 것이 북쪽이다. 고향방문단의 꼬리에 「예술단」을 접붙여 내놓았던 애당초의 북적 제안부터가 그렇게 계산된 것이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고의적인 건망증까지 합세하여 「문화교류의 물꼬」가 트인 것 같은 환상을 자꾸만 조장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적어도 아직은 북쪽의 문화예술이 「이념과 체제에의 복무」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현실에 대해 본질적인 천착이 없는 많은 단순하고 선량한 시민들의 감성은 정책당국에 새로운 부담도 되고 있다. 『그까짓 혁명가극하나 보여주고 북한영화 몇개 대학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뭐 위험하다고 화염병과 최루탄 공방전으로 정력의 무한낭비를 하고 있느냐』고 못마땅해 하는 시각도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러나 아직도 적화통일의 환상을 전혀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른바 문화교류도 그 전략으로만 이용하는 것이 북쪽의 입장임이 분명하다면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

그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은채 통합된 국민으로 거듭나는 「문화적 통일」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문화교류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대내적 혼란의 입장정리를 위한 명분도 세울 수 있다.

「이념에 복무하는 예술」로서의 영화를,「동원된 민중」이 들고나온 것을 순수민간 행사로 간주하고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교류하는 일이나,친북으로 경도된 재외한인 명사를 통해 취재기자까지 입맛대로 지정한 음악회를 「순수한 문화교류차원」행사로 해석하기 위해서도 논리적 정립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교류의 목적이 통일의 현재진행을 위한 기여로서의 역할에 우선적으로 있는지,통일된 미래를 위한 기여로서의 역할이 더 소중한지를 논의하는 일로부터 출발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은 일이 명백히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겠지만 우선순위와 단계설정 같은 일에서 짚어보아야 할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은 또한 우리의 통일철학의 정립이 전제되기를 요구한다. 민족의 단일국가 형성이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절대가치라고 합의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고,인간의 자유가 민족의 단일국가 형성을 위해서 희생될 수 없다고 합의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두가지 경우가 혼재하여 그 차이가 분별하기 어려울만큼 미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가 되든 충분한 토론을 해보아야 할 일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충분하고 이상적인 통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 독일조차도 『너무 서둘러서 국민통합을 놓쳤다』고 독일의 지성 귄터 그라스는 한탄하고 있다.

남북은 45년 동안 별개의 삶을 살아 왔다. 적어도 우리가 파악하는 한 북한은 36년동안 일제의 침략을 받았고 이어서 45년 동안 공산주의 80년을 지내왔다. 우리가 통일 이후만나야 하는 것은 그렇게 살아온 2천만이다. 그런 과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를 해보아야 한다. 동질성의 회복을 위해 전통예술 민속잔치를 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 극심한 이질화의 진행이 이뤄진 상태에 있으므로 그것조차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교류의 주체를 놓고 이견과 갈등을 연출하는 우리의 현실도 너무 소모적인 경지에 이르지 않도록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문화교류의 주체를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맡는다는 것은 타당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또한 이념적 메시지를 선전하기 위하여 물량공세를 펴는 대규모 공연작품에 우리가 주눅이 들것은 없다. 더구나 대결하듯 졸속한 대형무대를 만드는 일은 의미 없고 어리석은 일이다. 보편적이고 민족정서가 담긴 내용으로 한민족의 역사를 공유하고 회복해 가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확실하게 80년간 역사로부터 단절되거나 왜곡되어 왔던 것이 북한이다. 그로 인한 이질을 극복하는 일을 문화교류의 순서로 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통일 이후를 위한 거시적인 안목과 우리가 서로 합의한 형태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미시적 시각을 이상적으로 융합한 문화교류 정책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1990-11-12 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