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의 여름. 물밀듯이 남으로 내려오는 소련제 탱크 위에서 펄럭이던 깃발을 우리는 기억한다. 「인민공화국」기. 중앙청에서 혹은 도청ㆍ군청ㆍ면사무소 옥상에서 공포를 흩날리던 깃발이었다. ◆태극기와는 어디서나 대치관계에 있어 왔던 기가 인공기. 그 깃발 아래서 서로가 총을 쏘고 포를 쏘고 피를 흘렸다. 두 깃발을 앞에 두고 마주앉은 대표들이 설전을 벌여오기는 또 그 얼마였던가. 서로가 그 깃발에 영예를 안기고자 혈투를 벌일 때 태극기와 인공기는 적의를 내뿜었다. 한겨레의 비원과 통한을 상징해 온 두 깃발. 생각하자면 맺힌 응어리는 깊다. ◆그 두 깃발이 베이징 하늘 아래서 함께 함성을 안으면서 물결쳤다. 겨레의 노래 「아리랑」의 합창이 경기장으로,하늘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김기림이 「인민평론」(1946년7월)에 쓴 「한 기ㅅ발 받들고」의 「한깃발」은 아니었다. 「찢어져 퍼덕이던 기빨」도 아닌,「두깃발」이었지만 「한깃발」되었던 태극기와 인공기.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이다』(네덜란드의 지휘자 안세르메).변화한 상황에 부여된 새로운 의미가 이것인가. ◆외국의 언론도 『국기는 두개이나 민족은 하나』였다고 평한 남북 화합의 장이 베이징 하늘 아래 펼쳐졌다. 한 핏줄임을 확인하면서 목놓아 감격한 응원석. 경기 외적인 성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매양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은 지나친 흥분. 이런 자리에서까지 「림수경」을 들먹이는 그들의 계산된 생리를 바로 보면서 마음을 풀줄은 알아야겠다. 「서울평양축구 교환」만 해도 지나친 흥분이 낳은 오발탄. 「침착한 흥분」이어야겠다는 뜻에서의 말이다. ◆지금의 「오발탄」도 언젠가는 「정발탄」이 될 수는 있다. 그런 날을 보다 앞당기기 위해서도 신중하고 침착한 우리의 자세는 요청되는 것. 「두 기ㅅ발」은 「한 깃발」이 되어야 한다. 두 깃발이 섞여 휘날린 이번 대회는 그 날로 한걸음 다가섰음에 다름 아니다.
1990-09-2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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