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보통사람끼리 만나 통일논의를 해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게 한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을 계기로 「전민련」이 우리앞에 명료하게 부상됐다. 정당성과 합법성에 의심을 받아가며 지하에 머무르는 것 같던 재야 운동권단체와 통일정책 당국이 보조를 맞추며 추진하는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의 주선과정은 짧은 동안 그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기대와 호감을 제공해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6일,에비회담 첫날이 무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가 느낀 심경은 깊은 실망의 늪을 헤매는 것이었다. 북측의 거의 시나리오화한 트집극은 차라리 예상했던 일이어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전민련측의 행동이 모처럼의 기대와 호감을 많이 희석시킨 것은 우리를 많이 서운하게 만들었다.
우선,이번 예비회담을 진정으로 성사시키려면 전민련측은 정부측의 「관례사항」 준수에 북측이 트집잡을 빌미를 줄여주도록 협조했어야 했다. 한마디로 회담이라지만 그것에 따르는 기계적인 절차와 현실적인 기능이 굉장히 많이 있다. 그것을 전민련측이 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회담장소ㆍ수용능력ㆍ경비 등은 치안을 주도하는 정부의 관장사항이다. 이런 일의 수행과정에서 관료적 경직성이 다소 작용하더라도 원숙하게 적응하는 것이 전민련측의 성숙함이고 승리이기도 하다. 재야적 시각으로 보면 정부측에 회담주도권 장악의 속셈이 비쳐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측 처사를 의연하게 수렴하여 북측 대표를 회담장에 앉히기만 했다면 그 성과는 전민련의 공으로 결실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전민련측이 보여준 다소 과잉한 행동거지도 우리를 실망시켰다. 통일에의 비원은 전민련만의 것이 아니다. 가슴속에 통곡을 담고 반백년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동족 모두의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통일은 너무 절박하고 소중한 것이어서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상이나 행동을 정당화하고 선전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는 일에는 저항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통일의 궁극적인 달성이 전민련이라고 하는 지극히 일부의 특정세력에 의해 이뤄질 수는 없다는 것을 7천만 한민족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전민련이 통일의 카드를 무소불능의 면죄부처럼 휘두르며 국제법상의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시위를 떼쓰고 제지하는 관리에게 극렬한 항의를 한다든지 북쪽의 생트집으로 무산된 엄연한 결과를 놓고 정부에 책임을 돌려 원색적 비난을 하며 농성을 기도하는 일 따위는 몹시 눈에 벗어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또하나 우리를 아연케 한 일이 있다. 환영꽃다발을 줄 화동의 구성이다. 문익환목사의 손자녀와 함께 간첩복역수 자녀로만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6ㆍ25 남침시절을 문득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감옥을 깨고 나온 사상범이 남침 인민군을 해방군으로 맞던 광경이다. 이 대회를 이렇게 이끌어간다면 「범민족대회」란 명칭은 부당하다. 북측에 악용될 소지만 명백하다. 특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어린이들을 이렇게 이용하는 일은 위험하다.
어쨌거나 전민련은 이제 국민앞에 노출되었다. 정의로 포장된 연막속의 신비한 존재가 아니다. 정신이 노출된 뒤에 받아야 할 가혹한 비판에 대해서 깊은 사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간곡한 충고에 귀기울이기를 당부한다.
그러나 26일,에비회담 첫날이 무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가 느낀 심경은 깊은 실망의 늪을 헤매는 것이었다. 북측의 거의 시나리오화한 트집극은 차라리 예상했던 일이어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전민련측의 행동이 모처럼의 기대와 호감을 많이 희석시킨 것은 우리를 많이 서운하게 만들었다.
우선,이번 예비회담을 진정으로 성사시키려면 전민련측은 정부측의 「관례사항」 준수에 북측이 트집잡을 빌미를 줄여주도록 협조했어야 했다. 한마디로 회담이라지만 그것에 따르는 기계적인 절차와 현실적인 기능이 굉장히 많이 있다. 그것을 전민련측이 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회담장소ㆍ수용능력ㆍ경비 등은 치안을 주도하는 정부의 관장사항이다. 이런 일의 수행과정에서 관료적 경직성이 다소 작용하더라도 원숙하게 적응하는 것이 전민련측의 성숙함이고 승리이기도 하다. 재야적 시각으로 보면 정부측에 회담주도권 장악의 속셈이 비쳐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측 처사를 의연하게 수렴하여 북측 대표를 회담장에 앉히기만 했다면 그 성과는 전민련의 공으로 결실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전민련측이 보여준 다소 과잉한 행동거지도 우리를 실망시켰다. 통일에의 비원은 전민련만의 것이 아니다. 가슴속에 통곡을 담고 반백년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동족 모두의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통일은 너무 절박하고 소중한 것이어서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의 위상이나 행동을 정당화하고 선전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는 일에는 저항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통일의 궁극적인 달성이 전민련이라고 하는 지극히 일부의 특정세력에 의해 이뤄질 수는 없다는 것을 7천만 한민족 모두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전민련이 통일의 카드를 무소불능의 면죄부처럼 휘두르며 국제법상의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시위를 떼쓰고 제지하는 관리에게 극렬한 항의를 한다든지 북쪽의 생트집으로 무산된 엄연한 결과를 놓고 정부에 책임을 돌려 원색적 비난을 하며 농성을 기도하는 일 따위는 몹시 눈에 벗어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또하나 우리를 아연케 한 일이 있다. 환영꽃다발을 줄 화동의 구성이다. 문익환목사의 손자녀와 함께 간첩복역수 자녀로만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6ㆍ25 남침시절을 문득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감옥을 깨고 나온 사상범이 남침 인민군을 해방군으로 맞던 광경이다. 이 대회를 이렇게 이끌어간다면 「범민족대회」란 명칭은 부당하다. 북측에 악용될 소지만 명백하다. 특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어린이들을 이렇게 이용하는 일은 위험하다.
어쨌거나 전민련은 이제 국민앞에 노출되었다. 정의로 포장된 연막속의 신비한 존재가 아니다. 정신이 노출된 뒤에 받아야 할 가혹한 비판에 대해서 깊은 사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간곡한 충고에 귀기울이기를 당부한다.
1990-07-2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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