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외언내언

입력 1990-05-08 00:00
수정 1990-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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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강목」의 이시진은 까마귀를 「자오」라고 표현한다. 『이 새는 나서 어미가 60일동안 기른다. 자라서는 어미에게 60일동안 먹이를 갖다 되바친다(반포). 가히 자효하는 새라 하겠다…』 ◆4촌쯤 될 까치와는 달리 우리에게는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새가 까마귀.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고 했을 정도로. 그런데 이 까마귀가 효를 알다니. 여기 유래하여 반포라는 말은 자식이 자라서 늙은 부모를 봉양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렇게 하는 효도를 반포지효라고도 하고. 그 까마귀만도 못한 인간들이 많아져 가는 세상이 아닌가. ◆옛사람들의 반포지효는 더러 노부모의 변을 아침마다 혀에 대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 맛이 구린 동안은 괜찮지만 그 맛이 가실때 그들은 울었다. 그것은 여명이 얼마남지 않은 전조라면서. 그런 반포지효의 한 선비는 그 노모가 어느날 회초리로 종아리를 쳤을 때 울었다. 전에는 울지 않았는데. 왜 우느냐니까 이 선비는 대답했다. 『전에는 맞으면 아팠는데 오늘은 아프지 않아서 웁니다』 노모의 기력이쇠잔했음을 안 때문이었으리라. ◆「삼국유사」에 나오는 손순의 효는 차라리 처절하다. 봉양하는 노모의 음식 뺏어먹는 제 자식을 아내와 의논하여 생매장하려 했던 것이니 말이다. 묻으려고 판 곳에서 석종이 나옴으로써 해피 엔딩을 보이는 얘기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효를 승화시킨 「얘기」일 뿐 방법론이 옳았던 효라고 할 수야 없다. 그렇긴 해도 이 「처절한 효」가 문득 생각나는 것은 숱한 패륜행위들을 보고 듣고있는 때문일까. ◆오늘의 모든 반 사회 행위의 족출이 효의 스러짐과 관계된다고 하여 지나침은 없다. 백행의 근본인 효를 잃는 그만큼 사회의 생리는 삭막하고 황폐해진다고 하겠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병리 다스리는 길을 효사상의 회복ㆍ진흥에서 찾자고 하는 말은 설득력을 갖는 것. 오늘이 바로 어버이날이다.

1990-05-0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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