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ㆍ정ㆍ군에 인맥 건재… 배후서 통치
외신들은 「중국의 실권자 등소평이 그가 갖고 있는 마지막 공직인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 마저 20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사임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은 당군사위 주석직을 내놓게 되면 자동적으로 내놓게 돼 있는 것이나 다만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전인대의 승인을 받게 돼 있어 전인대가 열릴때까지 형식상 가지고 있었던 직위.그러니까 그의 군사위 주석직은 지난 11월 당주석직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떠난 셈이다.
따라서 이번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 사임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관심은 모든 공직을 떠났으면서도 중국의 최고 실권자는 여전히 등소평이란 사실이다. 그는 어떤 근거로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등이 이같이 공식직함 없이도 실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당ㆍ정뿐 아니라 특히 군부내에 확고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등은 지난 1916년 지방군에 입대했고 호남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홍군에 입대한 이래 군정치부요원과 정치위원 등을 거치며 홍군과 팔로군에 두루 참여,혁명초기부터 군과 인연을 맺고 다져와 아직까지도 주요군지도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군의 지지를 바탕으로 등은 당중앙위의 비밀결의를 받아놓고 있고 이것이 그의 통치 근거임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지난해 5월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의 방중때 조자양 당시 공산당총서기는 『중국정치를 주무르는 것은 내가 아니라 등소평』이라고 귀띔한 후 당중앙위의 비밀결의사항이 있음을 알려주었었다.
등은 문화혁명과 지난 76년 천안문사태 등으로 인해 3차례나 실각,복권을 거듭한 끝에 82년 당중앙군사위 주석직을,이듬해에 전인대를 통해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차지했다. 그후 줄곧 이자리를 지켜오며 당ㆍ정ㆍ군내에 자신의 인맥을 심어왔다.
당중앙위의 비밀결의가 언제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당은 등소평동지가 지도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주석이나 당총서기(82년 이전에는 당주석)직등 표면상의 지도자 자리는 단 한차례도 차지하지 않은 채 이를 토대로 배후실력자로 권력을 행사해 온 것이다.
지난 82년 당시 화국봉 당주석을 부주석으로 끌어 내리면서 자신의 심복인 호요방을 당주석에 앉혀 후계자 수업을 시켰으나 호가 자신의 퇴진을 건의하는등 조속한 세대교체를 주장하고 나오자 즉시 실각시켰었다.
등은 3번째 후계자내정자인 강에게 총서기와 당 및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인계했으나 강에게 「최종합격판정」을 내릴 때까지는 실권자로서의 지위를 계속 누릴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중국에서 권력투쟁이 불붙을 것인지 여부는 올해 86세인 등이 얼마나 오랜기간동안 살아 남아 강체제확보에 기여하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김주혁기자>
외신들은 「중국의 실권자 등소평이 그가 갖고 있는 마지막 공직인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 마저 20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사임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은 당군사위 주석직을 내놓게 되면 자동적으로 내놓게 돼 있는 것이나 다만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전인대의 승인을 받게 돼 있어 전인대가 열릴때까지 형식상 가지고 있었던 직위.그러니까 그의 군사위 주석직은 지난 11월 당주석직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떠난 셈이다.
따라서 이번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 사임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관심은 모든 공직을 떠났으면서도 중국의 최고 실권자는 여전히 등소평이란 사실이다. 그는 어떤 근거로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등이 이같이 공식직함 없이도 실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당ㆍ정뿐 아니라 특히 군부내에 확고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등은 지난 1916년 지방군에 입대했고 호남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홍군에 입대한 이래 군정치부요원과 정치위원 등을 거치며 홍군과 팔로군에 두루 참여,혁명초기부터 군과 인연을 맺고 다져와 아직까지도 주요군지도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군의 지지를 바탕으로 등은 당중앙위의 비밀결의를 받아놓고 있고 이것이 그의 통치 근거임이 최근에야 밝혀졌다.
지난해 5월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의 방중때 조자양 당시 공산당총서기는 『중국정치를 주무르는 것은 내가 아니라 등소평』이라고 귀띔한 후 당중앙위의 비밀결의사항이 있음을 알려주었었다.
등은 문화혁명과 지난 76년 천안문사태 등으로 인해 3차례나 실각,복권을 거듭한 끝에 82년 당중앙군사위 주석직을,이듬해에 전인대를 통해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차지했다. 그후 줄곧 이자리를 지켜오며 당ㆍ정ㆍ군내에 자신의 인맥을 심어왔다.
당중앙위의 비밀결의가 언제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당은 등소평동지가 지도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주석이나 당총서기(82년 이전에는 당주석)직등 표면상의 지도자 자리는 단 한차례도 차지하지 않은 채 이를 토대로 배후실력자로 권력을 행사해 온 것이다.
지난 82년 당시 화국봉 당주석을 부주석으로 끌어 내리면서 자신의 심복인 호요방을 당주석에 앉혀 후계자 수업을 시켰으나 호가 자신의 퇴진을 건의하는등 조속한 세대교체를 주장하고 나오자 즉시 실각시켰었다.
등은 3번째 후계자내정자인 강에게 총서기와 당 및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인계했으나 강에게 「최종합격판정」을 내릴 때까지는 실권자로서의 지위를 계속 누릴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중국에서 권력투쟁이 불붙을 것인지 여부는 올해 86세인 등이 얼마나 오랜기간동안 살아 남아 강체제확보에 기여하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김주혁기자>
1990-03-2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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