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ㆍ혈연 이용,정치권 파고들어/인물 동향ㆍ군사 정보등 수집 보고/형은 컨트리클럽 대표로 재계 인사에 접근
국가안전기획부가 28일 발표한 서순은ㆍ순택형제의 간첩사건은 이들이 30여년동안이나 수사당국에 적발되지 않고 임약해 왔으며 특히 북한 재일공작지도부의 「거점책」이 직접 국내에 침투했다가 검거된 최초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안전기획부에 따르면 서순택은 김학근(68)이 총책으로 있는 재일관동지역 대남공작지도부의 「거점책」으로 김정일 등 북한지도부의 지령에 따라 「북한기지」「일본공작지도부」「서울」을 삼각거점으로 35년동안 암약해 왔다.
문제의 관동지역 대남공작지도부는 김일성이 「봉화산 그루빠」라는 조직명칭을 붙여줄 정도로 절대적 신임을 받아 온 일본내 최대 대남공작조직이라는 것이 안기부의 설명이다.
서순택이 「조총련」중앙의장인 한덕주(83)에게 포섭되어 대남공작활동을 한 대목 또한 한덕주가 대남 지하공작에 직접 관여하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서순택이 형 순은을 포섭하여 형제간첩으로 활동한것은 북한이 학연ㆍ지연은 물론 심지어는 혈연 등 모든 연고관계를 이용하여 집요하게 대남우회침투공작을 추진해 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또 문부식ㆍ예춘호 등 지명도가 있는 정치인을 공작대상으로 선정,정치권의 상층부에 접근을 기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순택은 60년12월 「조총련」동경본부 조직부 부부장 등 핵심간부로 활동하다가 중앙의장 한덕주에게 포섭된 뒤 「재일대남공작지도부」총책 김학근에게 인계되어 북한노동당에 입당하고 65년2월 대남공작에만 전념하기 위해 「조총련」에서 이탈해 「민단」으로 위장전향했다.
그는 60년대에는 이른바 「알까기식」의 대남지하당을 조직하는 공작에 주력하다가 69년12월 총책인 김으로부터 국내지도층 인사들과 교분이 넓은 셋째형 순은을 포함,부산상고 및 동아대 동창기반을 이용한 「대남고급정보 수집공작」으로 전환하라는 지령을 받고 70년1월 국내에 침투,활동한 공로로 3차례에 걸쳐 북한의 국기훈장과 공로메달을 받았다.
70년12월 순은이 도일하여 회사운영자금지원을요청하자 총책인 김과 접선시켜 노동당에 현지 입당시킨 뒤 공작금으로 5백만엔을 주고 포섭했다. 그뒤에는 그를 이용해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 주요인사를 비롯,예비역장성 등 군부의 주요인물 동향을 수집,보고해 왔다.
72년10월 「유신선포」,74년8월 「문세광사건」으로 신변에 위험을 느끼게 되자 일본에 들어갔다가 82년5월 입북하여 김정일 등을 면담,김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82년8월부터 다시 국내에 드나들면서 5공화국 출범이후의 권력실세판도와 5공화국 핵심인물 신원정보 등을 북에 보고하는 한편 정치ㆍ군사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형으로 하여금 「예비역장성친목모임」을 구성하도록 기도했다.
87년12월 총책인 김으로부터 『남조선에 직접 침투하여 위장업체를 설립하고 합법활동의 토대를 구축한 다음 형과 함께 여야정당의 상층부를 통해 고급정보를 수집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이에따라 88년3월 국내에 다시 침투,힐튼호텔 구내식당에서 13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동아대동창생 문부식씨(61ㆍ당시 민주당 하동ㆍ남해지구당위원장)로부터 『전국구 국회의원을 시켜줄테니 선거자금 5억∼6억엔(한화 30억∼36억원)을 낼 수 있는 재일교포를 소개시켜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이같은 사실을 총책인 김에게 보고한 결과 『민주당에 침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나 시일이 촉박하므로 다음 기회에 대비,계속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라』는 지령을 하달받았다.
89년12월에는 부산상고 동창생으로 정치ㆍ경제계에 교분이 두터운 전외환은행 동경지점 차장 이동우씨(61)와 동업형식으로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고려아카데미텔 816호실을 임대해 한국케라모스라는 위장업체를 설립하고 올 1월11일 사업자등록까지 마쳐 합법활동거점을 구축해 왔다.<오풍연기자>
국가안전기획부가 28일 발표한 서순은ㆍ순택형제의 간첩사건은 이들이 30여년동안이나 수사당국에 적발되지 않고 임약해 왔으며 특히 북한 재일공작지도부의 「거점책」이 직접 국내에 침투했다가 검거된 최초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안전기획부에 따르면 서순택은 김학근(68)이 총책으로 있는 재일관동지역 대남공작지도부의 「거점책」으로 김정일 등 북한지도부의 지령에 따라 「북한기지」「일본공작지도부」「서울」을 삼각거점으로 35년동안 암약해 왔다.
문제의 관동지역 대남공작지도부는 김일성이 「봉화산 그루빠」라는 조직명칭을 붙여줄 정도로 절대적 신임을 받아 온 일본내 최대 대남공작조직이라는 것이 안기부의 설명이다.
서순택이 「조총련」중앙의장인 한덕주(83)에게 포섭되어 대남공작활동을 한 대목 또한 한덕주가 대남 지하공작에 직접 관여하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서순택이 형 순은을 포섭하여 형제간첩으로 활동한것은 북한이 학연ㆍ지연은 물론 심지어는 혈연 등 모든 연고관계를 이용하여 집요하게 대남우회침투공작을 추진해 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또 문부식ㆍ예춘호 등 지명도가 있는 정치인을 공작대상으로 선정,정치권의 상층부에 접근을 기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순택은 60년12월 「조총련」동경본부 조직부 부부장 등 핵심간부로 활동하다가 중앙의장 한덕주에게 포섭된 뒤 「재일대남공작지도부」총책 김학근에게 인계되어 북한노동당에 입당하고 65년2월 대남공작에만 전념하기 위해 「조총련」에서 이탈해 「민단」으로 위장전향했다.
그는 60년대에는 이른바 「알까기식」의 대남지하당을 조직하는 공작에 주력하다가 69년12월 총책인 김으로부터 국내지도층 인사들과 교분이 넓은 셋째형 순은을 포함,부산상고 및 동아대 동창기반을 이용한 「대남고급정보 수집공작」으로 전환하라는 지령을 받고 70년1월 국내에 침투,활동한 공로로 3차례에 걸쳐 북한의 국기훈장과 공로메달을 받았다.
70년12월 순은이 도일하여 회사운영자금지원을요청하자 총책인 김과 접선시켜 노동당에 현지 입당시킨 뒤 공작금으로 5백만엔을 주고 포섭했다. 그뒤에는 그를 이용해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 주요인사를 비롯,예비역장성 등 군부의 주요인물 동향을 수집,보고해 왔다.
72년10월 「유신선포」,74년8월 「문세광사건」으로 신변에 위험을 느끼게 되자 일본에 들어갔다가 82년5월 입북하여 김정일 등을 면담,김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82년8월부터 다시 국내에 드나들면서 5공화국 출범이후의 권력실세판도와 5공화국 핵심인물 신원정보 등을 북에 보고하는 한편 정치ㆍ군사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형으로 하여금 「예비역장성친목모임」을 구성하도록 기도했다.
87년12월 총책인 김으로부터 『남조선에 직접 침투하여 위장업체를 설립하고 합법활동의 토대를 구축한 다음 형과 함께 여야정당의 상층부를 통해 고급정보를 수집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이에따라 88년3월 국내에 다시 침투,힐튼호텔 구내식당에서 13대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동아대동창생 문부식씨(61ㆍ당시 민주당 하동ㆍ남해지구당위원장)로부터 『전국구 국회의원을 시켜줄테니 선거자금 5억∼6억엔(한화 30억∼36억원)을 낼 수 있는 재일교포를 소개시켜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이같은 사실을 총책인 김에게 보고한 결과 『민주당에 침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나 시일이 촉박하므로 다음 기회에 대비,계속 유대관계를 공고히 하라』는 지령을 하달받았다.
89년12월에는 부산상고 동창생으로 정치ㆍ경제계에 교분이 두터운 전외환은행 동경지점 차장 이동우씨(61)와 동업형식으로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고려아카데미텔 816호실을 임대해 한국케라모스라는 위장업체를 설립하고 올 1월11일 사업자등록까지 마쳐 합법활동거점을 구축해 왔다.<오풍연기자>
1990-03-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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